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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7명 “공정한 세상, 동의 안해”… ‘정부비리 은폐’ 첫손 꼽아

10명 중 7명 “공정한 세상, 동의 안해”… ‘정부비리 은폐’ 첫손 꼽아

Posted May. 08, 2025 08:08,   

Updated May. 08, 2025 08:08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일자리를 잡으려고 알아본 적도 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허모 씨(24)는 대학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듣고 있다. 그는 학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고 주말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 6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한다. 12·3 비상계엄 이후 두 차례 집회에도 참석했지만 사회분위기가 크게 바뀌지 않아 오히려 무력감만 느꼈다. 허 씨는 “집안이 유복한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취업 준비에 집중할 수 있다”며 “내게 시간은 돈”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은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록 울분을 느끼는 비율도 높아졌다. 10명 중 8명은 12·3 비상계엄 이후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 등과 관련해서 울분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7명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7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지난달 실시한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일반인 조사’에 따르면 공정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69.5%는 ‘기본적으로 세상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결국 불공정한 일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에도 64%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연구팀은 “세상이 공정하다는 신념이 높아질수록 울분 점수가 낮아지는 유의미한 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도 울분을 강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울분을 느끼게 하는 정치·사회 사안에서 ‘정부의 비리와 잘못 은폐’,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가 1,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언론의 침묵·왜곡·편파보도’,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울분을 가장 많이 느꼈다. 60세 이상은 9.5%가 심한 울분을 느꼈지만 30대는 17.4%가 심한 울분을 느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에 접어들면서 본인이 바꾸지 못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무력감을 더욱 많이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차원서 정신건강 문제 다뤄야”

‘울분’이라는 개념은 독일에서 처음 도입됐다. 1990년 10월 독일 통일 이후 옛 동독 주민들이 옛 서독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 차별이나 부당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갑갑한 감정을 느끼는 사례가 늘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런 감정을 울분이라고 표현했다. 2019년 독일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장기적 울분’ 상태는 15.5%에 그쳤다.

이날 조사에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수준도 낮게 나타났다.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수준을 묻자 평균 점수는 보통(3점)보다 낮은 2.59점(5점 만점)에 그쳤다. ‘좋지 않음’이란 평가가 48.1%로 절반에 육박했는데, ‘좋음’(11.4%)의 4배 이상 수치였다.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꼽혔다. 이윤경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과 함께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 필요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문제에 보다 우리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지지가 약화하면서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 부족해진 상황을 여러 가지 정신건강 문제의 악화가 보여주고 있다”며 “사회적인 차원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수준이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10명 중 7명 “공정한 세상, 동의 안해”… ‘정부비리 은폐’ 첫손 꼽아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