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의 대미 경제 의존도가 1기 행정부 당시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금까지 트럼프가 밝힌 관세 인상 품목들이 모두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고, 이들을 합치면 벌써 전체 대미 수출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발 관세 폭탄의 파편을 동맹국인 한국이 집중적으로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트럼프가 관세 인상 방침을 발표한 반도체,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의 지난해 대미 연간 수출액은 522억9164만 달러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대미 수출액이 1277억8647만 달러였는데 이 중 5개 품목이 40.9%나 차지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이미 결정했거나 부과를 예고한 5개 품목은 모두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이다.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미국 시장에 101만 대를 수출한 자동차 품목의 경우, 작년 국내 기업 전체 해외 수출액의 49%가 미국으로 향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는 대미 수출액이 지난해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7월 미국 회사와 1조4600억 원 규모의 대형 계약을 맺는 등 바이오 분야에서도 미국 수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해당 품목이 한국의 주력 업종인 것뿐 아니라 최근 수년간 한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 역시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첫해인 2017년 686억 달러였던 대미 수출은 지난해 1277억 달러로 두 배 가까이로 커졌다. 한국의 전체 수출 가운데 미국 수출 비율 역시 2017년 12.0%에서 지난해에는 18.7%로 급상승했다. 그간 미중 갈등을 피해 한국 기업들이 북미 지역으로 사업장을 옮기고 수출을 확대한 것이 주력 산업의 ‘관세 폭탄’이라는 철퇴로 돌아온 것이다.
이처럼 높아진 대미 의존도와 미국의 전방위적인 관세 인상 때문에 한국 기업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응하기가 1기 행정부 당시보다 훨씬 힘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에 사업장을 둔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추가 관세가 현실화되면 한국 기업들의 원가경쟁력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며 “당장 사업성 검토를 해 미국에 공장을 짓더라도 4∼5년은 걸릴 수 있기에 그사이 관세 부담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