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준비 안 된 중대재해법, 억울하게 감옥 갈 CEO 쏟아낼 것

준비 안 된 중대재해법, 억울하게 감옥 갈 CEO 쏟아낼 것

Posted December. 28, 2021 07:52,   

Updated December. 28, 2021 07:52

ENGLISH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한달 앞두고 기업들이 공포감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 절반 이상은 법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며 자포자기 상태고, 대기업도 뚜렷한 대비책이 없어 전전긍긍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문제가 생기면 그 때 고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일 기세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다음달 27일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된다. 사망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형사처벌 하한선을 정해 기업인을 처벌하는 법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다.

 경영자가 어떤 의무를 다해야 벌을 면할 수 있을지 분명치 않은 이 법은 제정 때부터 ‘죄형 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명확히 할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시행령이 나온 뒤 혼란이 더 커졌다. 처벌 대상이 대기업 오너인지, 계열사 대표인지, 안전보건 책임자인지 불확실하고, 경영자가 지켜야할 의무도 “안전보건 인력이 충실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라”는 식으로 시행령 내용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보니 대기업들은 최고안전책임자 등 임원 자리를 총알받이로 만들고, 중견·중소기업은 사고가 터질 때 대신 처벌받을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있다. 외국기업의 한국 지사장 자리는 사고가 발생하면 귀국도 못하고 한국 감옥에 갇힌다는 이유로 기피 보직이 됐다고 한다. 공공부문에서도 처벌대상인 정부 부처 장관과 청장, 지방자치단체장, 공기업 사장들이 만약에 대비해 방패막이 조직을 만들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근로자 과실로 발생한 사고까지 경영자가 떠안을까봐 현장에 폐쇄회로(CC) 카메라를 설치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의 53.7%는 “의무사항 준수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자는 법의 취지에 반대할 기업은 없다. 하지만 처벌을 피할 방법조차 알 수 없는 법은 ‘운 나빠’ 감옥에 갈 기업인만 양산할 뿐 산업현장의 안전 수준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늦기 전에 기업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면 시행을 몇 년 늦춰서라도 과도한 형사처벌을 과징금 등 행정제재로 바꾸고, 추상적 법령 내용을 명확히 보완해 억울하게 처벌받는 기업인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