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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 사라져가는 프랑스

Posted October. 09, 2018 07:52,   

Updated October. 09, 201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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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9일 프랑스 파리의 상원의사당 앞에 세입자 200여 명이 몰려들어 “우리는 점유자이지만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시위를 벌였다. 국회가 주거법(일명 엘랑법)을 개정하려고 하자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협하려 한다”며 반발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 집주인들은 매년 11월부터 3월까지 5개월 동안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집에 들어와 있는 점거자를 쫓아낼 수 없었다. 집 없는 이들이 겨울에 거리로 내몰릴 경우 추위에 고통을 겪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일 프랑스 하원은 겨울에도 세입자의 퇴거를 허용하는 등 집주인의 권리가 강화되는 내용의 엘랑법을 통과시켰다. 현재는 집주인이 48시간 내에 무단 점거자에게 나가 달라고 요청하지 않으면 내보낼 수 없었지만 관련 조항이 삭제되면서 이젠 그런 시한 없이 아무 때나 퇴거시킬 수 있게 됐다. 또한 무단 점거자로 간주되더라도 퇴거까지 두 달 동안의 시간이 주어졌던 조항도 폐지돼 퇴거 명령 즉시 추방된다. 정상적으로 계약서를 쓴 임차인의 경우 월세를 제때 내지 않더라도 겨울에는 쫓아낼 수 없다는 규정은 유지됐다. 최소한의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자유 평등 박애 삼색기로 대변되는 프랑스는 자본주의 속에서도 사회주의적 연대 성향이 강하고, 엄격한 법치보다는 인권과 자유를 강조하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유명하지만 그 색채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거리마다 폐쇄회로(CC)TV로 빈틈이 없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CCTV나 카메라 설치를 꺼려 왔다. 국가 감시를 늘리고 개인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몇 차례 테러를 겪은 이후 경각심이 높아지고 치안과 질서 유지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거리에 CCTV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4일 “프랑스 일상에서 시민들의 이동에 저해가 되는 비시민적인 행동을 근절하겠다”며 파리 전역에 카메라 900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자 야당이 “야만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2016년 86명이 사망한 트럭 테러가 발생한 니스에는 이미 2200대의 카메라가 거리에 설치돼 테러 예방과 불법 주차 단속 등에 쓰이고 있다.

 프랑스 전역의 정육점 주인 1만8000여 명도 공포에 떨고 있다. 밤마다 채식주의자들이 가게 유리창을 향해 돌을 던지고 스프레이로 ‘고기=살인’ ‘살인마’라고 쓰는 공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육점뿐만 아니라 생선, 치즈 가게와 햄버거 가게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 정육협회 장프랑수아 기아르 회장은 “31년간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이렇게 폭력적인 분위기는 처음 경험한다”며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다. 돼지 도축 일을 하고 있는 뱅상 아랑 씨는 7일 “지금까지 살인 위협만 150차례 이상 받았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며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동정민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