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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만행 멈춰야 제2의 아일란 비극 막아"

Posted September. 08, 201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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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새벽 바다에서 세 살 아일란과 다섯 살 갈립, 그리고 아내를 한꺼번에 잃은 시리아 난민 압둘라 쿠르디 씨(40). 4일 홀로 고향 코바니로 돌아와 먼저 간 가족의 장례를 치른 그는 이튿날 친척 집으로 향했다. 친척들의 위로에 줄곧 침묵했던 그는 아일란의 또래인 조카의 머리만 한없이 쓰다듬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평범한 이발사로 지내던 쿠르디 씨의 가정이 무너진 건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민중 봉기가 내전으로 번지자 정부군은 마구잡이로 민간인들을 잡아들였다. 쿠르디 씨도 다섯 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고 결국 집과 가게를 정리하고 피란길에 올랐다. 알레포를 거쳐 터키와의 국경 인근 코바니로 피했다.

2일 터키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된 사진 한 장으로 난민 문제를 지구촌 핫이슈로 바꿔 놓은 비극의 주인공 아일란이 태어난 곳도 코바니다. 하지만 그곳도 살 만한 곳은 아니었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기승을 부리면서 고문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졌다. 쿠르디 씨 가족은 2013년 터키 국경을 넘었고 그리스를 거쳐 유럽에 정착하기 위해 에게 해를 건너다 참변을 당했다.

쿠르디 씨 가족 외에도 많은 시리아 난민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일 중간 기착지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역에서 발이 묶여 있는 시리아 난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데이르에르조르 시의 초등학교 영어교사였던 마리 알아바우드 씨(33)는 두 달 전 집에 폭탄이 떨어져 남편을 잃은 뒤 두 살배기 등 네 아이를 데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가장 큰 위험은 굶주림. 지난 며칠간 자녀들이 빵 조각과 유통기한이 지난 생선 통조림밖에 먹지 못하자 온종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 알아바우드 씨는 폭탄이 터질 때 고막이 터진 다섯 살짜리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알레포 출신으로 임신 5개월의 골레자르 시도어 씨(33)는 큰아들이 거리에서 놀다 폭탄 파편에 맞아 사망한 뒤 택시 운전사인 남편과 함께 떠나기로 결심했다. 잠도 안 자고 7시간을 내리 걸었다는 그는 지금도 바나나 하나를 놓고 난민들이 싸우고 있는데 곧 겨울이 오면 어떻게 될지 두렵다고 말했다.

이들리브에서 집 6채와 100ha 규모의 올리브 농장을 소유했던 마자드 하자 하산. 알카에다와 연계된 알누스라 전선과 IS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자 고향 땅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여섯 살 난 어린 조카딸이 크레용으로 탱크, 폭탄, 군인을 그리는 것을 본 뒤 결심을 굳혔다.

네 살짜리 딸과 난민 생활 중인 후세인 베부디 씨(33)는 탈레반의 폭력성에 경악해 고향을 등졌다며 독일에 정착한다고 해도 하층민으로 대우받을 테니 걱정이라고 했고, 폭탄테러로 불구가 된 유세프 레이드 씨(26)는 목발에 의지해 모술에서 터키를 거쳐 헝가리로 왔다.

이런 가운데 운이 좋은 시리아 난민들은 독일 땅에 속속 도착하고 있다. AP통신은 7일 필사의 각오로 수천 km를 달려 뮌헨에 도착한 난민들 앞에 환영 인파가 넘쳐 났다고 전했다. 유럽연합 유럽위원회가 9일 발표하는 난민 12만 명 분담안에서 독일은 가장 많은 3만1443명을 수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WSJ는 각계각층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난민 수용 정책에 대해 조용하고 거대한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이설 snow@donga.com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