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오빠 때문에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빈곤에서 구한 주역이었고, 전태일은 그 산업화의 어두운 그늘에 분신()으로 항거한 노동운동의 선구자였다. 궁핍한 시절, 입에 풀칠부터 하는 것과 노동자도 인간답게 사는 것 중 무엇이 더 절실한지에 대한 담론은 지금도 무성하다. 박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과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그런 과거에 구애받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2012년 8월 28일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 대통령은 서울 창신동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 했으나 쌍용차 노조원 등이 골목길을 가로막았다. 전 의원도 재단 방문보다 현재의 노동문제 해결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반대 성명을 냈다. 박 대통령은 청계천6가 전태일 동상을 찾아 헌화하려 했지만 이번엔 노조원들이 꽃을 길가에 버렸다. 박 대통령은 봉제공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1970년 11월 노동자도 인간이다 라고 외치며 몸을 불사른 장소를 돌아본 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화해 협력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발길을 돌렸다.
1621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국 순방에 전 의원이 동행한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 야당의원의 동참을 거듭 요청했으나 야당이 수용한 건 처음이다. 새정치연합이 전 의원을 추천한 것은 그가 갖는 민주화와 노동인권의 상징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란다. 다분히 박정희와 전태일을 염두에 둔 것이니 여당의 소통 요청에 가시 있는 장미로 화답한 셈이다.
여행은 낯선 이도 친구로 만든다. 성장기를 공주로 보낸 박 대통령과 여공으로 보낸 전 의원은 출신 배경도 다르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전 의원은 영국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아 영어도 자유롭고 기업을 꾸려본 경험이 있다. 두사람이 차제에 사적인 화해를 넘어 국익을 위해 진지한 초당 외교를 벌이기 바란다. 대통령과 여야에 국민이 바라는 것도 그런 모습일 것이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