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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보면 기업문화 DNA 보인다

Posted July. 03, 201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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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에 복장 파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창조경영을 내세운 삼성그룹이 2008년 비즈니스 캐주얼을 선언하자 다른 대기업들도 줄줄이 넥타이를 풀었다. 그런데 같은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도 기업마다 스타일이 판이하다. 복장규정도 다르지만 상이한 기업문화가 자연스럽게 옷차림에도 녹아들기 때문이다.

진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기업문화는 오랫동안 형성돼 DNA처럼 각 구성원에 새겨지는 것이라며 같은 기업의 구성원들은 가치관뿐 아니라 옷 입는 방법까지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기업마다 특색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vs LG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같은 전자업종이지만 스타일과 선호하는 브랜드에서 차이가 난다. 삼성전자는 2008년부터 칼라가 있는 재킷과 정장류 하의를 입고 티셔츠 면바지 운동화 청바지는 착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한국에 스마트폰이 상륙하고 소프트웨어가 강조되면서 점점 옷차림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부 부서는 원칙적으로 착용하면 안 되는 청바지와 운동화도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다 10년 앞선 1998년부터 비즈니스 캐주얼을 허용했다. 남자는 넥타이 없는 반팔셔츠와 면바지, 여자는 품위를 잃지 않는 평상복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민소매, 몸에 딱 붙는 셔츠, 쇼트팬츠 등은 금물이다. 엔지니어를 제외한 본사 대외업무 직은 정장 바지와 셔츠를 고수한다. 이는 튀는 것보다 인화()를 중시하는 LG문화가 바탕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과 LG는 선호하는 브랜드에서도 차이가 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삼성은 제일모직 빈폴, LG는 LG패션의 해지스나 닥스를 주로 입는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도 눈치를 보며 관계회사 옷을 교복처럼 입게 된다고 말했다.

롯데 vs 신세계

롯데와 신세계는 유통업계 전통의 라이벌답게 직원들의 패션도 극명하게 대립된다. 롯데는 다소 격식을 중시하고 신세계는 정보기술(IT) 기업 못지않은 캐주얼한 스타일을 앞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롯데는 2010년 비즈니스 캐주얼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여름과 겨울에만 넥타이를 풀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다 올해 5월 전면 허용 체제로 바꿨다. 하지만 사내 복장규정에 따르면 비즈니스 캐주얼은 비즈니스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청바지는 금물이다. 실제로 본사 남성 직원들은 반팔 화이트 계열 셔츠와 정장 바지를 즐겨 입는다. 고객을 맞는 매장 직원들은 물론 정장을 고수한다. 이는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취한다라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거화취실()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세계는 2008년부터 비즈니스 캐주얼을 선언했다. 찢어지거나 물이 너무 빠진 것만 아니면 청바지도 입을 수 있다. 청바지에 깃이 있는 피케 티셔츠 차림의 직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정용진 부회장이 평소 조직문화의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신세계 측의 설명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는 자신들의 성과를 드러내는 편이고 롯데에 비해 집단적인 문화가 덜하다라고 말했다.



김현수 이서현 kimhs@donga.com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