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좋은 의사 넘치는데 의료시장 묶어두는 나라

대만이 타이베이 근교의 타오위안 국제공항 인근에 외국인을 위한 의료관광 특구를 건설한다는 소식이다. 병원과 호텔을 지어 초기 4년간 중국 등에서 의료관광객 4만5000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의료서비스 가격을 홍콩 미국의 30% 수준으로 낮게 책정할 예정이어서 외국인환자 유치에 시동을 건 한국 의료산업에 타격이 예상된다.

의료 수준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도 내년에 정부와 병원, 여행사가 공동으로 외국인환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의료관광 병원에 대한 세제혜택 등 의료관광객 유치 방안을 발표했다. 급팽창하는 세계 의료시장에서 한국은 자칫하면 싱가포르와 태국 같은 선발 주자에게 도전장을 내밀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

한국은 외국인 환자가 2007년 1만6000명에서 지난해 6만 명으로 늘어 의료관광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국의 인재들이 의대로 쏠리는 현상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우수 두뇌들이 몰리면서 가격 대비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다. 요즘에는 미국 러시아 중동의 부유층 환자들이 한국에서 치료를 받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시장에 대한 규제를 그대로 놔둔 채 개별 병원들이 알아서 환자를 유치하라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서비스를 선진화해 해외의 부유층 환자를 받아들이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외화소득도 올릴 수 있다. 그러려면 질 좋은 의료서비스와 자본을 결합시켜야 한다. 싱가포르는 1983년 아시아 최초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제도를 도입해 기업과 외국인에게 병원 설립 및 투자를 허용했다. 병원들은 민간 투자를 받아 첨단 의료기기를 갖추고 병실을 고급화해 국제경쟁력을 높인 덕분에 해외환자가 1999년 9만 명에서 지난해 63만 명으로 급증했다.

한국 정부는 영리병원을 5년째 검토만 하고 있다.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면 제주도 내에는 제한적인 영리병원을 허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스스로 기회를 포기하려 든다. 영리병원이 의료양극화를 낳는다는 식의 부정적인 시각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영리병원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시행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영리병원을 허용할 여건이 아직 성숙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재희 전 장관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진 장관은 외국 정부와 병원이 그만큼 우리의 의료관광 시장을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