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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체벌의 추억

Posted July. 21, 20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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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권상우를 일약 스타로 만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학생의 자그만 잘못에도 말보다는 주먹을 내려 꽂는 교사가 활약하는 이 영화는 나에게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학교는 정글이었고 어떤 교사는 맹수 같았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였다. 2부제 수업이 있는 줄 모르고 방과 후 복도를 뛰어가다 한 남자 교사에게 잡혔다. 눈에 불이 번쩍 했고 나는 복도에 쓰러졌다. 정신없이 뺨을 얻어맞은 그때 경험은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됐다.

많은 교육학자들은 학생 훈육에는 체벌 등 부정적 피드백보다는 칭찬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체벌은 학생 마음에 상처를 주고 교사에 대한 반감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고통을 떠나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초등학생을 무차별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오장풍 교사처럼 학생들에게 상습적으로 감정적인 체벌을 가하는 교사가 우리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체벌은 쓰기에 따라 아이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교사의 체벌이 감정 섞인 폭행인지 사랑의 매인지는 학생들이 가장 잘 안다. 그렇지 않아도 교실붕괴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사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을 깨우지 못하고,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손바닥 몇 대 때리기나 운동장 돌리기, 오리걸음 등 최소한의 체벌까지 금지한다면 학생 지도는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이구동성이다.

체벌에 대한 학부모 의견은 엇갈린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학기부터 체벌을 전면금지하라고 지시했다. 오랜 논쟁을 거쳤음에도 아직 정답이 나오지 않은 체벌 문제가 학교 현장의 의견수렴이나 학부모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교육감 한 사람의 소신과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조치는 곽 교육감의 공약인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상론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다. 체벌 문제는 당사자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에 합의를 거쳐 보다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야 옳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