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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마라톤 3번째 출전서 기적의 승리

Posted February. 25, 201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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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승훈(22한국체대)이 24일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오벌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에서 12분58초55의 올림픽기록으로 한국에 5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아시아 선수로는 장거리 종목 첫 우승이다. 2위는 러시아의 이반 스코브레프(13분02초07), 3위는 네덜란드의 보프 더용(13분06초73)이 차지했다. 세계기록 보유자 스벤 크라머르(네덜란드)는 어이없는 실수로 실격됐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다시 쓴 이승훈의 금메달 상황을 재구성했다.

한 바퀴 이상 앞서며 올림픽 신기록

일찍 출발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세계 랭킹 9위 이승훈은 5조 인코스에서 출발했다. 그보다 랭킹이 앞선 선수들은 모두 뒤에 편성됐다. 최선을 다한 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만 m는 이번이 겨우 세 번째 출전. 14일 5000m에서 은메달을 따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 종목 메달 후보조차 아니었다. 네덜란드의 아르옌 판 더르 키프트가 그와 함께 출발선에 섰다.

함께 타는 선수가 신인이라 정보를 제대로 몰랐어요. 그냥 제 페이스대로 달렸습니다.

1만 m는 400m 트랙을 25바퀴나 돌아야 하는 빙상의 마라톤. 이승훈은 첫 바퀴부터 구간 1위로 나서더니 5200m 지점에서는 당시 1위 기록보다 10초22나 시간을 앞당겼다.

이날 올림픽오벌에는 오렌지색이 물결쳤다. 스피드스케이팅 종주국 네덜란드 관중들이 자국의 금메달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메운 것이다. 이승훈은 키프트를 한 바퀴 이상 따돌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네덜란드 관중들조차 기립박수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순간 판단 착오 이승훈 부담됐다

이승훈의 레이스를 지켜보는 게 아니었다. 세계선수권에서 12번이나 우승했고 이번 대회 5000m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건 크라머르였지만 혜성처럼 등장한 이승훈은 눈엣가시처럼 위협적인 존재였다. 크라머르는 5000m 경기를 마친 뒤 마지막 세 바퀴를 도는 동안 이를 악물었다. 이승훈의 막판 스퍼트가 나를 미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크라머르는 마지막에 이를 악물 필요가 없었다. 16바퀴(6400m)를 돌았을 때 그는 이승훈을 2.9초 앞서며 인코스로 들어왔다. 17바퀴를 마쳤을 때도 그는 인코스로 들어왔다. 착각한 코치가 잘못 지시해 인코스를 연달아 뛴 것. 크라머르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고는 이승훈보다 5.8초 앞섰고 4.05초 앞선 채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의미 없는 기록이었다.

2, 3위가 인정한 세계 최고

크라머르가 실격 소식을 전해 듣고 고글을 내던질 때 이승훈은 태극기를 휘날렸다. 잠시 후 열린 플라워 세리머니. 이승훈 옆에 있던 3위 보프 더용과 2위 스코브레프가 눈빛을 교환하더니 각자의 양팔에 이승훈의 다리를 끼운 채 번쩍 들어올렸다. 이승훈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환하게 웃었다. 이승훈의 금메달에 이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감동적인 가마 세리머니였다. 크라머르와 마지막 조에서 경기를 한 스코브레프는 레이스 중 크라머르가 (코스를 착각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크라머르는 팬들과 그의 스폰서들로부터 메달을 따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고 그것이 실수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승훈은 이날 자신의 최고기록을 45일 만에 21초49나 앞당겼다. 그는 올림픽 기록도, 크라머르의 실격도 기적 같은 일이다.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딴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일어난다.



이승건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