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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돈도 번 돈도 다 북으로 두고 온 가족은 힘이자 짐

받은 돈도 번 돈도 다 북으로 두고 온 가족은 힘이자 짐

Posted October. 29, 20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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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보다 못한 애비지요. 내가 가족들 다 잡아먹었소. 강태우 씨(51이하 가명)는 10년 전 겨울 홀로 두만강을 건넜다.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불러낼 계획이었다. 북한에 있을 때 무너진 탄광에 깔려 허리를 크게 다쳐 심각한 장애가 생겼지만 강 씨는 한국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용접기를 잡았다. 정착지원금에다 용접 일로 번 돈을 보태 가족들을 데려올 돈을 마련했다. 3년 전 아내와 세 아이를 데려오려 1600만 원을 브로커에게 줬는데 국경을 넘는다는 전화가 오고 나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깜깜했지요. 브로커는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가족들이 북한 국경을 넘다 보위대에 붙잡혀 영창에 있다고 했다. 지금은 죽었는지 소식도 닿지 않는다.

영창에 갇히느니 풀뿌리라도 캐먹고 목숨 부지하는 게 나을 뻔했소. 남은 인생 떨어져 지내더라도 이따금 돈이나 부쳐 주는 걸로 만족하고 살았으면 좋았을 걸. 강 씨는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마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울 때마다 가족이 그립다. 돈이 얼마가 더 들더라도 가족들을 꼭 데려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강 씨뿐만 아니라 많은 탈북자들의 꿈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모두 한국으로 불러들이거나 가족들에게 더 많은 돈을 보내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를 하려는 탈북자에게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은 삶의 원동력이면서도 자립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저축 못해도 가족에게 송금

많은 탈북자들은 최우선적으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쓴다. 취재팀이 접촉한 200명 가운데 가족을 데려오거나 생활비를 보태려 북한에 돈을 보냈다고 응답한 사람은 41명(20.5%)이었다. 응답을 꺼린 경우가 많아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북한에 가족이 있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돈을 보낸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북한에 보내는 돈의 액수를 밝힌 17명은 1년에 평균 206만 원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1만7000여 명의 탈북자 중 5000명이 200만 원을 보낸다고 가정하면 1년에 100억 원이 북한에 흘러들어 가는 셈. 지난해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무상 지원한 197억 원의 절반 정도 되는 돈을 탈북자들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정착지원금도 자신의 정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쓴 사례가 많았다. 200명 중 27명의 응답자가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정착지원금의 일부를 브로커 비용으로 썼다고 답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의 24%가 정착지원금을 브로커 비용으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온 윤성식 씨(39)는 아내와 딸만은 자신이 겪은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바로 올 수 있도록 한 사람당 700만 원씩, 1400만 원을 브로커에게 건넸다. 윤 씨는 직장을 찾을 때까지 홀로서기 하라고 주는 돈이 정착지원금인데 가족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데 쓰고 나니 한 푼도 남지 않더라고 말했다. 혼자 탈북해 북한에 있는 아내에게 돈을 보낸다는 박규민 씨(44)는 혼자 살아서 돈 쓸 일은 크게 없지만 돈을 보내느라 저축은 하나도 못했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중국과 북한에 있는 브로커를 통해 돈을 보낸다. 보내는 돈의 30%는 브로커들이 수수료로 뗀다. 한국이나 중국에 있는 브로커는 한국에 은행 계좌를 갖고 있다. 일종의 환치기다. 한국에 온 뒤 5년 동안 꾸준히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고 있는 유선영 씨(30)는 중국 브로커는 한국에 있는 조선족을 통해 한국 통장을 구한다며 인터넷으로 계좌이체를 하면 몇 분 만에 확인이 된다고 전했다. 중국 브로커는 밀수꾼이나 세관, 중국인 상인을 통해 북한에 있는 브로커에게 돈을 전달한다.

찐빵 속에 휴대전화 숨겨 연락도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종종 전화 통화도 한다. 북한에서는 중국의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하다. 휴대전화만 무사히 숨겨 북한에 들여가면 중국 국경에서 5km 이내 지역에서는 국제전화로 통화할 수 있다. 국경에서는 이불이나 베개 속까지 뒤져 휴대전화의 반입을 막기 때문에 요즘에는 찐빵 속에 전화기를 숨겨 들여가기도 한다. 지규정 씨(29)는 돈은 보내지 않고 1년에 두 번씩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한다. 지 씨는 전화 한 통 하는 데 드는 돈은 20만 원 정도라며 최근 감시가 심해져 비용이 올랐다고 말했다. 브로커가 휴대전화를 숨겨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찾으러 가는 일종의 위험수당이다.

통화 시간은 길어야 10분이다. 몸 성히 잘 지내는지 가족들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보낸 돈은 받았는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묻고 나면 끝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감시가 심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탈북자가 있는 가족은 특별감시 대상이다. 김순영 씨(40여)는 1998년 탈북한 뒤 7년 만에 그리던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됐다. 무사히 살아계셨구나. 할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누가 엿들을까 봐 김 씨의 어머니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딸의 안부를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빨리하고 그만 끊으라는 브로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배터리 충전이 안 돼 통화를 못하는 사례도 있다. 보내준 돈으로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약이라도 지어 드셨는지 묻고 싶은데 전기가 없어 통화가 안 된다는 거예요. 브로커가 자전거 바퀴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곳까지 걸어가 배터리 충전을 한 뒤에야 겨우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북에 남은 가족, 꿈이자 짐

지난 추석 김남숙 씨(41여) 집에도 나물 볶는 냄새, 전 부치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졌다. 올해 차례상에는 큰오빠 위패도 모셨다. 김 씨는 지난해 큰오빠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여워하던 나를 못 보고 간 게 아쉬웠는지 큰오빠가 자꾸 꿈에 나타나요. 김 씨에게는 2002년 설이 북한에서 보낸 마지막 명절이었다. 7남매가 모두 모이면 송편 한 접시만 앞에 두고도 마음이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집 구석구석에는 가족들 사진이 걸려 있다. 무서워서 사진 한 장 못 들고 나왔는데 뒤늦게 나온 조카들이 챙겨 왔어요. 김 씨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모두 북한에 남았다. 뒤따라 나온 언니는 보위대에 붙잡혀 관리소로 끌려갔다. 식당에서 일해 번 돈으로 두 아이를 키우려면 빠듯한 살림이지만 김 씨는 북한의 가족들에게 1년에 두 번씩 꼭 돈을 보낸다. 한 번에 100만 원도 보내고 150만 원도 보낸다. 북에서는 부모님이 1년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이다.

김 씨의 바쁜 손놀림에 소박한 차례상이 차려졌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앞에 두고 김 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기름진 쌀밥 앞에 놓고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서로 떠먹여주면 더는 소원이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