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어제 평화롭고 질서 있게 마무리 됐다. 고인은 85년 영욕의 생애를 역사로 남기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호국영령들과 함께 영면에 들어갔다. 6일간 국장 기간에 세계와 국민은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민주화와 인권,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삶의 무게를 확인해준 장례였다.
고인의 국장이 화합의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치러져 다행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때는 검찰 수사와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갈등과 증오의 분출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점이 많았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각의 시도도 있었다. 이번엔 그런 불상사가 전혀 없었다. 과거 김 전 대통령 측과 구원()이나 경쟁적 관계에 있던 인사들까지 대거 조문을 하고, 일부는 상주 역할을 자임했다. 시종 화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정부와 유족 측의 협조도 원활했다. 이런 화해와 화합의 정신을 계속 살려나가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그것이 진정 고인을 기리는 길이다.
고인을 보내면서 우리는 이제야말로 김대중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김대중 시대는 민주화를 위한 기나 긴 노정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갈등과 분열의 정치, 지역주의라는 부정적 유산도 남겼다. 고인이 대통령 재임 중에는 물론이고 퇴임 후에라도 현실정치에서 이런 퇴행적() 요소를 청산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정치의 개혁에서 국정을 책임 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역할이 크다. 제1 야당인 민주당도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했던 고인의 적자()임을 자부한다면 대화와 타협, 다수결 원칙에 근거한 의회민주주의에 충실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국회로 복귀해 내달 1일 개회하는 정기국회 참여를 시발점으로 삼기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의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비롯해 지역주의와 갈등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리민복의 증진을 위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1987년 이후 22년간 보수와 진보 진영 간에 두 번에 걸친 수평적 정권 교체가 있었고, 법과 제도를 통한 권위주의 시대의 악폐 청산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비라는 가시적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구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론과 국민이 자유롭게 정권을 비판할 수 있고, 공권력이 시위대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장하는 건 논리에 맞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고인은 마지막 일기에서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썼다. 우리는 이제 민주화라는 투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법과 상식이 통하고 모든 국민이 한층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선진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