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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순교자의 김은국

Posted June. 27, 20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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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타임스는 1964년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가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 심리적 전통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품이라며 한 신작()소설을 격찬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국계 미국 작가 김은국(미국명 리처드 E 김)의 데뷔작 순교자(The Martyred)는 출간과 함께 미 문단과 언론의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한국을 미국 문단에 소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이 작품으로 그는 1969년 한국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추리소설 기법을 빌린 순교자는 625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순교한 목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가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고난과 실존의 문제, 현실의 진리와 위선의 문제 등 근본적인 인간 영혼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어 번역판에서 순교자란 제목을 생각할 때 교()를 너무 강하게 인식하지 말고, 그보다 순()이라는 말이 지닌 진솔한 뜻을 더 크게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김은국은 1947년 월남해 서울대에 진학했으나 625전쟁이 터지자 학업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통역장교로 일하다 인연을 맺은 미군 장성의 도움으로 휴전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학사 과정을 끝내고 석사 학위를 준비하던 중 순교자를 썼다. 이 작품에 이어 516군사정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심판자,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잃어버린 이름 등 그의 주요 작품은 모두 조국인 한국을 무대로 하면서도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다뤘다. 그의 작품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1990년대 초반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커피 광고 모델로 더 익숙할 수도 있다.

김은국의 작품과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실존주의적 고뇌였다. 식민지, 분단, 고향과의 이별, 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온갖 파고()를 직접 경험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매사추세츠 주의 자택에서 77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 시절 순교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 새삼 떠오른다.

권 순 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