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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34시간 떨며 기다려 김 추기경 조문하는 마음

[사설] 34시간 떨며 기다려 김 추기경 조문하는 마음

Posted February. 19, 200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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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행렬이 영하의 찬바람 속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성당 앞에 어제 새벽 6시 성당 문이 열리기 전부터 시민이 모여들어 해가 뜰 무렵에는 퇴계로까지 줄이 늘어났다. 오후엔 2km 가량의 참배행렬이 세종호텔을 지나 지하철 명동역에 닿았다. 참배를 마치려면 평균 3시간이 걸리는 데도 무질서나 소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를 업은 30대 여성은 4시간 동안 줄을 서느라 힘들었지만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추기경을 애도하는 마음은 온갖 곳에서 소통을 차단하는 벽을 허물었다. 혼혈 가수 인순이는 뵐 때마다 등을 두드려주시며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추모 인파 속에는 승복을 입은 승려와 개신교 목사의 모습도 보였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참배객이 왔다. 여야 정치인의 구분도 없었다. 그를 괴롭혔던 과거 권력자도 찾아와 머리를 숙였다.

살아서 국민의 존경을 받던 김 추기경은 죽어서도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파 이념 지역 종교 빈부로 나뉘어 분열과 대립, 갈등으로 점철돼 있던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통합과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월드컵 축구경기 이후로 온 국민이 이렇게 한마음을 보인 적은 없었다.

김 추기경은 평생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낮은 데로 임하다 삶의 마지막 길에서 각막을 기증했다. 이 고귀한 정신은 벌써 우리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어제 오후 2시부터 명동성당 앞에 설치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부스에는 추기경의 뜻을 이어 장기기증을 하려는 시민이 몰려들었다. 시각장애인들도 미끄러운 길을 마다않고 와서 참배했다.

김 추기경은 1980년 4월1일 동아방송 DBS 초대석에 출연해 꽃샘추위도 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확실을 갖고 있다면 결국 민주주의가 찾아 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봄이 짧게 끝나고 혹독한 꽃샘추위가 왔지만 추기경의 예언대로 대한민국은 마침내 민주화를 이루었다. 비단 정치뿐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쳐 우리 모두 춥고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