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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금 1원도 아끼자는 정부에서 벌어진 일

[사설] 세금 1원도 아끼자는 정부에서 벌어진 일

Posted December. 20, 200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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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옛 해양수산부 사무실이 있던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옆 빈터에 사무용 의자, 책상, 냉장고, 탁자, 소파, 박스들과 서류 뭉치가 열흘간 쌓여있었다. 해수부 업무가 국토해양부와 농수산식품부로 넘어가자 공무원들은 몸만 떠났고 새로 이사 온 보건복지가족부가 해수부 사무집기를 밖에 내놓은 것이다. 물건들은 대부분 멀쩡한 상태였다. 구입한지 2년이 채 안 된 새 것도 있었고 한 개당 20만원 가까이 되는 비싼 의자도 있었다. 방치됐던 서류뭉치 중엔 해양수산부 장관의 도장이 찍힌 공문도 있었다.

물건들은 언론이 질책을 한 뒤 22일 오후에야 급히 창고로 옮겨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버리려 한 게 아니라 부처 협의를 거쳐 재활용하거나 가져다 쓸 예정이었다고 말했지만, 집기들을 뒤죽박죽 쌓아놓은 걸 보면서 누가 그 말을 곧이듣겠는가. 재활용할 거였다면 주위에 안내판이라도 세워놓거나 쓸만한 것들을 뒤져서 가져가는 시민들을 말렸어야 했다.

버려진 집기들을 보며 국민은 모두 우리 세금으로 산 것들일 텐데라며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예산낭비를 줄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헬기 대신 KTX로 출장을 다니면서 과거 새만금 사업 때 제각각 공사로 거액의 예산이 낭비된 사례 등을 공무원들에게 상기시키기도 했다. 과거 정부의 예산낭비 사례를 질타하면서 국민의 세금은 1원도 소중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라면 세금 절약은 말뿐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해수부의 사무실 집기 방치로 날아간 국민 세금은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는 예산 10% 절감을 외치면서 뒤로는 이런 꼴이나 보여주니 국민의 얼굴이 절로 찡그려지고 관료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것이다. 공무원은 혈세()라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국민의 피와 땀이 묻어있지 않은 세금은 없다. 혈세로 관용차를 굴리고 사무실 집기를 사서 쓰는 공무원들이 혈세 아까운 줄 모른다면 그 자리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 새 정부는 혈세 절약의 실적을 언제나 보여줄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