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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 또 고난의 행군으로 주민 쓰러지게 할 건가

[사설] 북, 또 고난의 행군으로 주민 쓰러지게 할 건가

Posted October. 24, 200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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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도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수확의 기쁨을 못 느낀다고 한다. 북한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에 따르면 당()이 수확한 곡식 가운데 35개월분만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는 군량미로 거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어제 국제사회의 긴급지원이 없으면 함경북도와 양강도 전역, 함경남도 일부 지역의 식량난이 인도주의적 비상사태로 치달을 것이라고 밝혔다. WFP는 5월에도 이 지역의 53개 군을 조사한 결과 만성적 식량난 단계를 넘어 극심한 식량생계 위기에 빠져있다며 긴급지원을 호소한 바 있다. WFP 기준으로 인도주의적 비상사태는 극심한 식량생계 위기보다 더 심각한 기아()상태다.

다음달 중순쯤 미국 정부의 대북() 지원 식량 50만t 중 10만t이 도착하겠지만 악화일로의 식량위기는 좀처럼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다른 나라들도 국제 금융위기로 대외원조 삭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선 빠졌지만 그것만으로 식량난이 해결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금보다 식량난이 훨씬 심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19951997년)도 견뎌냈다며 자력갱생을 거듭 주문하고 있지만 민심이 그때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시엔 거의 모두가 아사() 위기에 내몰렸지만 지금은 식량을 가진 주민과 못 가진 주민으로 갈라져 갈등이 심화되는 상태다. 심지어는 장마당에서 부()를 축적한 이른바 돈주들이 식량을 독과점해 쌀값 폭등을 부채질하고, 특권계층은 다시 고난의 행군 시기가 닥쳐올 것에 대비해 식량 비축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길은 하나뿐이다. 핵 폐기의 2단계 조치인 핵 프로그램 검증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반북() 여론을 누그러뜨리고, 미국 및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북은 남북관계의 전면적 차단을 포함한 중대결단 운운하며 우리 정부에 104 남북정상 합의를 무조건 이행하라고 윽박지르지만 이 또한 핵 검증이 마무리돼야 논의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