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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허락한 품에 안기다

Posted October. 18, 20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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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내게 재능을 발견하도록 해줬다. 산을 못 만났으면 내게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소중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클라이머는 암벽을 탄다 하지 않고 암벽을 한다고 말한다. 암벽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화되어 함께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산 등반도 그렇다. 정상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신이 허락한 품에 안기는 것이다.

12일 캠프2를 출발해 캠프3을 거쳐 캠프4로 향했다. 호흡은 거칠고 다리는 무겁다. 심장이 터질 듯한 이 느낌이 좋다.

해발 7400m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더욱 거세졌다. 13일 오전 3시40분 김재수 대장과 나, 그리고 셰르파 3명은 마지막 캠프인 캠프4의 텐트 문을 나섰다. 바람이 거칠다.

3중 등산화 밑에 아이젠을 차는 데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 7600m쯤에서 손과 발가락, 코가 시려 견딜 수가 없다. 돌아서야 했다. 부모님이 주신 몸을 잘 간직해야 한다. 캠프4로 귀환. 하루 종일 텐트가 찢길 만큼 강풍이 계속됐다. 실수로 먹을 것(즉석국, 차류)을 챙겨 오지 않아 온종일 물만 끓여 마셨다.

14일 오전 7시 10분. 셰르파 한 명은 몸이 좋지 않아 내려갔다. 우리와 셰르파 2명이 거센 바람을 뚫고 출발했다.

해발 7000m 이상에서 추위는 아무리 장비가 발달해도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상대다.

쉴 때마다 손바닥을 서로 맞부딪치고 허벅지를 수없이 때렸지만 해가 중천인 데도 추위를 감당할 수 없다. 먹을 것이라곤 사탕 몇 개가 전부. 마지막 사탕을 입에 넣고 녹이면서 정상까지의 시간을 가늠한다. 대략 한 시간. 정상이 저기 보이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번 원정엔 산소를 준비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공기를 마시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게 바닥에서 퍼덕이는 물고기 같다. 현재 대기 중 산소량은 해수면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숨이 가빠 다섯 걸음 이상 계속 걸을 수 없다.

오후 2시 40분. 마침내 정상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김재수 대장과 조우했다. 캠코더에 대고 뭔가 얘기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진다. 간신히 여기가 마나슬루 정상입니다, 너무 멋집니다라고만 했다. 고산 등반 시작 전에는 정상에 서면 무슨 생각이 들까가 궁금했는데 지금 답은 빨리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올여름 K2에서 숨진 동료 대원 3명의 사진을 정상에 묻고 발길을 돌렸다. 정상에 오른 기쁨은 너무 짧다. 구름 위로 봉우리들이 섬이 돼 떠 있다. 장엄하고 아름답다. 마침내 휴식의 순간이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