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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격노()

Posted July. 29, 200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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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지리원 산하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한국령()령에서 주권 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 즉 주인 없는 섬으로 바꿔 명기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격노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그런데 뉴스 밑에 달린 댓글에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 더 많다. 격노할 사람은 국민입니다 마치 남의 탓 인 양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대통령 책임 아닌가요? 미국에 화를 내셔야지, 왜 죄 없는 부하들한테 화를 내십니까?와 같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의 격노가 민심()의 공감을 충분히 얻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다.

아무래도 격노가 너무 잦은 때문인 듯싶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때부터 인수위의 자료 외부 유출,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 등 사고가 터질 때마다 격노한 것으로 보도됐다. 취임 후에는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 재산 의혹, 공천파동을 비롯한 당내 분란, 부처 이기주의, 그리고 최근 금강산 관광객 사건 늑장보고에 대해서도 격노했다고 한다. 화는 자주 내는데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보니까 국민이 시큰둥할 수밖에.

더욱이 격노 호통 질책 같은 표현은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아랫사람 탓만 하는 인상을 준다. 한 대기업의 홍보담당 임원은 마치 기업 CEO가 부하 직원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면서 대통령은 CEO와 달라서 바위처럼 무겁되 한 번 화를 내면 천지가 요동칠 정도는 돼야한다고 했다. 중앙대 법대 이상돈 교수는 홈페이지에서 소련의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때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첫 마디는 야만적 행위 같은 신랄한 용어였다면서 그럼에도 대처는 차갑게 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감정이나 말을 여과 없이 전하는 청와대 참모진들도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분노를 빌어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것이겠지만 꼭 격노와 같은 극단적인 단어를 써야할까. 그런 표현이 국민에게 어떻게 들릴지 한번쯤 생각해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격노보다 더 화를 내면 그 때는 대노라고 할 건가.

허 문 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