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교체 이유에 대한 관계자들의 설명이 혼란스럽다. 당사자인 한 청장은 어제 촛불시위 대처 문제로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상황인데 경찰청장은 임기제인 만큼 내가 물러나기로 했다고 했다. 경찰의 공식 발표는 시위 대응을 지휘하느라 피로가 누적돼서라는 것이다. 반면 청와대 관계자는 시위에 잘못 대처한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기자가 교체의 성격을 묻자 비공식적으로 답한 내용이다. 정부는 수도 서울 치안 책임자 교체가 불법시위 대처 잘못에 대한 문책인지, 용퇴인지, 아니면 건강상의 이유인지 왜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가.
문책의 성격이 강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 청장은 초기부터 유연한 대응이라는 명목으로 시위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결과적으로 불법 과격 폭력으로 치닫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이 크다. 선량한 시민들이 시위대와 거리를 둔 뒤에도 불과 수십 명의 도로 점거조차 막지 못했으며,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폭력을 선동한 시위꾼 검거에서도 무기력했다.
그렇더라도 청와대와 어 청장이 서울 경찰청장 교체 과정에서 보인 태도는 석연찮다. 한 청장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불법 시위대로부터 법 질서와 국민의 생활권을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면하려는 보신()의 냄새가 난다. 두달 반 동안 서울 도심이 무법천지로 전락하고 공권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 과연 서울청장 혼자만이 책임질 일인가. 청와대는 겉으로는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는 상반된 메시지를 내놓아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시위대의 폭력에 맞서야 하는 일선 경찰관들의 기운을 뺐다. 어 청장도 시위 기간 중 윗선의 눈치나 살피면서 경찰 최고 책임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가 서울 경찰청장의 교체 배경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경찰 조직 2인자의 거취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서울 치안 책임자의 경질에는 불법 폭력시위 대처에 대한 경찰의 자체 평가와 반성, 그리고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 청장의 책임을 물은 것이 사실이라면 문책 사유를 분명히 밝혀 법 질서 수호 의지를 강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