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새로운 황색 돌풍이 불고 있다. 대만 출신 투수 왕젠민(26뉴욕 양키스)이 그 주인공이다.
왕젠민은 31일 양대 리그 승률 1위팀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7과 3분의2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16승(5패)째를 따냈다. 메이저리그 다승 공동 1위다. 현 추세라면 박찬호(샌디에이고사진)가 세운 동양인 한 시즌 최다승 기록(2000년18승)은 물론 20승도 바라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전설적인 투수 사이영(Cy young)을 빗대 사이왕(Cy Wang)이란 표현까지 썼다.
한국의 메이저리그 게시판에는 왕젠민과 박찬호 중 누가 더 뛰어난 투수인가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곤 한다. 메이저리그 2년차인 왕젠민을 통산 113승을 거둔 박찬호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둘이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선발출전땐 양키스타디움 청천백일기 물결
IMF 사태로 우울하던 1990년대 후반. 한국민들은 박찬호가 강속구로 덩치 큰 빅리거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발견했다.
대만인들은 왕젠민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 대만은 엄연한 독립국이지만 올림픽 등 국제 체육 행사에서 자국 국기를 사용할 수 없다. 중국의 반대 때문에 올림픽기를 대신 건다. 그러나 왕젠민이 선발로 등판하는 날 양키스타디움에는 청천백일기가 휘날린다. 박찬호가 많은 삼진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은 150km대 후반의 강속구와 각도 큰 커브, 그리고 커브와 슬라이더가 합쳐진 슬러브 덕분이었다.
왕젠민도 150km대 중반의 빠른 공을 던진다. 그러나 187이닝을 던지면서 삼진은 고작 62개뿐이다. 주무기가 싱커이기 때문이다. 싱커는 직구처럼 들어오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공이다.
싱커 덕분에 왕젠민은 대표적인 땅볼 투수가 됐다. 올해 규정 이닝을 채운 87명의 투수 가운데 9이닝 기준 탈삼진(2.98개)이 가장 적은 투수가 바로 왕젠밍이다.
150km강속구 등판하는 날 대만 전국민 TV앞으로
2000년대 초까지 한국 야구계는 온통 박찬호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지금 대만이 그렇다. 왕젠민이 등판하는 날 신문의 1면과 방송의 첫 뉴스를 장식한다.
박찬호 때문에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가 떨어지기도 했다. 대만에서도 요즘 야구팬들은 좀처럼 대만 프로 리그를 관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오전에 생중계되는 왕젠민의 경기에는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