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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DNA 지문

Posted January. 21, 20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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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경기 화성 연쇄살인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된다. 범인이 나타나 내가 진범이오라고 자백하고 증거를 내놓아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화성 사건은 모두 10번에 걸쳐 일어났다. 이 중 9번째 사건은 1990년 11월 태안읍 병점리 야산에서 여중생이 손과 발이 묶인 채 살해됐다. 이 사건 수사에서 처음으로 DNA 지문분석 기술이 이용됐다.

당시 수원지검 강력부장은 얼마 전 강정구 교수 수사 파동 때 물러난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었다. 시신에서 발견된 정액의 혈액형은 B형.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혈액형만으로 범인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었다. 김 부장은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정빈 교수에게서 정액 혈액 머리카락 침 등을 분석해 범인을 식별할 수 있는 신기술에 관해 들었다. 바로 DNA 지문분석이었다. 1988년 영국에서, 1989년 미국에서 DNA 지문을 근거로 각각 최초의 유죄 판결이 나왔다.

9번째 화성 사건 수사팀은 일본의 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지만 피해자 시신에서 나온 정액과 용의자의 DNA 지문이 일치하지 않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낙담한 형사들이 일본에서 온 서류를 비가 오는 허공에 날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삽입한 허구다. 화성 사건은 1986년 9월 첫 사건 이후 거의 매번 범인의 정액이 발견됐다. 최근 김 전 총장은 첫 사건부터 DNA 지문분석 기술을 이용할 수 있었더라면 범인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아쉬워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DNA 지문이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1000억분의 1. DNA 지문분석은 친자() 확인이나 전쟁 중에 숨진 군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도 쓰인다. DNA 지문분석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사람이 신기술의 구원을 받아 뒤늦게 무죄가 입증돼 석방된 사례도 있다. 19일 발바리로 통했던 연쇄강간범(45)이 DNA 지문분석에 걸려 체포됐다. DNA 지문을 남기고도 미궁에 빠진 살인의 추억은 존재하기 어렵게 됐다.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