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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비 급한데 조사다 뭐다 허송세월

Posted December. 23, 20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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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복구비가 빨리 나오면 다른 작물이라도 심을 수 있을 텐데.

전남 나주시 산포면 덕례리. 21일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마을 앞 들판은 하얀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눈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논과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눈을 뒤집어쓴 수십 동의 비닐하우스는 에스키모의 대형 이글루처럼 보였다.

기자가 22일 마을을 찾아갔을 때 주민들은 하우스와 하우스 사이에 고인 물을 퍼내고 있었다. 쌓인 눈이 녹으면서 물이 고이면 비닐하우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냉해를 입은 고추를 빨리 걷어내고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복구비가 지원되지 않아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500평의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재배하는 이영발(51) 씨는 정부 합동조사단의 현지 피해 조사 후 복구비가 지급되려면 이런저런 절차 때문에 50일이 걸린다며 2주 후 열무를 심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복구비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4일 이후 폭설로 나주시에서 발생한 피해액은 22일 현재 425억3700만 원. 전남 전체 피해액(1562억2400만 원)의 27%를 차지한다.

전체 1만5000여 개 농가 가운데 2453개 농가가 피해를 봤다. 그동안 공무원과 장병 등 2만8000여 명이 투입됐으나 비닐하우스 철거 및 복구율은 58%에 그치고 있다.

산포농협 앞에 모인 주민들은 정부의 복구비 지원액 가운데 보조비율이 낮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가 가장 큰 비닐하우스의 경우 재배면적 2ha 이상은 융자 70%, 자부담 30%로 국비와 지방비 지원이 없다.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한다.

면세유 확대 공급을 건의하는 주민도 있었다.

서용렬(59) 씨는 비닐하우스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면 온풍기를 많이 틀어 눈을 녹여야 한다며 면세유 값이 지난해보다 15%나 올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신평마을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강병남(53) 씨는 4일 이후 7차례에 걸친 폭설로 9동의 비닐하우스가 모두 주저앉아 1억여 원의 피해를 봤다. 지난해 여름 수해로 비닐하우스가 모두 물에 잠겨 수천 만 원의 빚을 진 상태여서 막막하기만 하다.

강 씨는 해마다 고추 배추 수박을 번갈아 가며 하우스 농사를 지었는데 이번 눈으로 다음 작물인 배추 농사까지 망치게 됐다며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농사지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의 특산품인 배도 폭설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다. 문평면 금옥리에 있는 서상기(60) 씨의 과수원은 18년생 배나무 320여 그루가 모조리 부러졌다.

까치 피해를 막기 위해 7년 전 2000만 원을 들여 설치한 그물망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바람에 배 농사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과수원에서 연 30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던 서 씨는 부러진 나무를 뽑아내고 3년생 나무를 심으면 7년 뒤부터나 수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승호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