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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V권력

Posted November. 24, 200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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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예요? 전 세계 언어로 사랑한단 뜻이야. 덕수궁 돌담에 가득 붙여진 종이를 배경으로 연인이 나눈 말이다. 나는 종로서 강력3반 말단 형사입니다이런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합니다나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SBS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속의 청혼은 감동적이었다. 사랑은 카메라 플래시처럼 한순간에 펑 터지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 세운 나라의 대통령은 윤재희 한 사람입니다 같은 명대사도 남겼다. 심지어 문화재인 덕수궁 대한제국기의 돌담에 남기지 말아야 할 상처까지 남겼다.

덕수궁 돌담에 쩔꺽 들러붙은 800여 장의 사랑해요는 죽을힘을 다한 남자의 사랑과 용기 있는 여자의 사랑을 보여 주려는 장치였을 거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끔찍한 사랑이다. 바쁜 형사가 9시간이나 종잇장 붙이기에 매달리는 것도 우습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문화재에 접착제를 문대는 짓도 상식 이하다. 더구나 덕수궁 관리소에는 접착식 종이(포스트잇) 30장만 붙이겠다고 거짓말까지 했다니,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사가 활개 치는 나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TV 드라마가 문화재를 훼손한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KBS는 왕과 비를 찍으면서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 인정전 마당에 LP가스통을 설치하는 대담함을 발휘했다. 아차하다 목조건축물에 불이라도 붙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오싹해진다. 좋은 방송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직업 정신인가, 아니면 문화재보다는 방송이 중요하다는 오만방자함인가.

프라하의 연인 제작진이 사과문을 냈음에도 시청자의 분노가 가시지 않는 건 문화재까지도 우습게 보는 TV권력의 타락 때문이다. 시청률만 올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 잘 보일 수 있다면 사실도 왜곡하는 방송은 영상 테러리스트나 다름없다. 이젠 제작 여건 때문에식의 핑계는 대지 말기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 남 탓, 신문 탓, 환경 탓에 역사 탓까지 하는 정치권력에 지친 지 오래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