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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에 쉼표는 없다

Posted November. 23, 200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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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의 속도감이 그저 좋았습니다. 시속 100km만 달려도 온몸에 쾌감이 전해 옵니다. 덕분에 평생 다른 오락거리를 찾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성공한 기업으로 대서특필해 화제를 모은 오토바이 헬멧 부문 세계 1위 기업 홍진HJC의 홍완기(65) 회장.

1971년 창업 이후 헬멧으로 세계를 석권한 그를 21일 경기 용인시 이동면에 있는 회사에서 만났다.

회장실로 들어서자 현대적 감각의 오토바이 헬멧과 청자 화병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각종 상과 트로피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한국을 빛낸 경영인,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 스위스 제네바 국제 발명품대회 금상.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일하는 것이 노는 것보다 즐거웠으니까요.

마침 한국화랑검도협회 임원들이 찾아와 홍 회장이 오토바이 헬멧 소재로 개발 중인 검도 모자를 품평했다.

그는 최근에는 바람을 받으면 불빛이 나는 헬멧 액세서리 윈드 라이트도 발명해 특허 출원 중이다.

충남 논산시의 중농() 집안 7형제 중 장남으로 강경상고를 나온 그는 전형적인 자수성가 기업인이다. 우유 배달과 막노동으로 학비를 벌며 한양대 공업경영학과(현 산업공학과)를 다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봉제공장을 차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입는 가죽 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공장이 그가 이듬해 설립한 헬멧 내장재 업체인 홍진기업의 모태다.

1974년 헬멧을 만들기 시작해 198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6년 만인 1992년 미국 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2001년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막내 동생이 10년 전 로키산맥에서 헬멧을 테스트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동생 셋이서 각각 미국, 중국, 유럽법인을 맡고 있다.

홍 회장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100평형대 아파트에서 아내와 단 둘이 산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지난달 자신의 집을 취재한 뒤 (홍 회장은) 서울의 고급아파트에 살지만 미국 백만장자가 즐기는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고 쓴 데 대해 그는 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대형아파트가 대수롭지 않았나보다고 멋쩍어했다.

외환위기 때 부자가 됐습니다. 생산량의 98%를 수출하고 있어서 환율이 오른 덕을 본 거죠. 집 없는 직원들을 위해 용인과 성남시 분당에 사둔 사원주택도 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부자는 계획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되는 것 같습니다.

홍 회장은 매년 100억 원이 넘는 순수익 대부분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한다. 그 자신도 헬멧 관련 특허를 10여 개나 가진 발명왕이다.

30여 년 동안 헬멧을 생산한 그는 지난해 5월 자신이 2대 주주인 오토바이 업체 효성기계의 대표를 함께 맡았다. 2008년까지 배기량 1000cc급 대형 오토바이를 생산해 세계적 업체로 키우겠다는 포부다. 저속으로 달리면 보조바퀴가 나오는 오토바이 개발도 시작했다.

부자가 됐다고 해서 먹을 것, 입을 것에 고급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장면도 자주 먹습니다. 부자라서 좋은 점은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겁니다.



김선미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