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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 울었다

Posted August. 24, 200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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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이홍권) 심리로 열린 항소심 법정.

하반신이 마비된 남편의 자살을 도와 숨지게 한 혐의(촉탁 살인)로 기소된 김모(58여) 씨가 울먹이며 피고인석에 섰다.

김 씨의 남편 박모(사망 당시 63세) 씨는 30여 년 전 척수염에 걸리는 바람에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 왔다.

이 때문에 김 씨는 남편을 대신해 포장마차도 하고, 건물 청소도 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홀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김 씨는 세 자녀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막내아들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연구소에 근무 중이다.

남편 박 씨는 1995년 자살을 시도했다. 더는 가족들을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자살이 미수에 그치면서 박 씨는 그 후유증까지 겹쳤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괴로워하던 박 씨는 올 3월 말 자신의 집에서 양잿물을 마셨다.

그리고 때마침 귀가한 아내에게 약을 먹었는데도 죽지 않는다며 나 좀 죽게 도와 달라고 했다. 김 씨는 남편의 목에 감겨 있던 붕대를 졸라 숨지게 했다.

김 씨는 남편의 사망 직후 인근에 사는 시누이에게 전화해 산책을 다녀와 보니 남편이 죽어 있었다며 자살로 위장했다. 그러나 병원 영안실 직원이 염을 하던 중 박 씨 목 주위에 난 상처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이 들통 났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청소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남편이 또다시 독극물을 마시고 죽여 달라고 애원해 순간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김 씨 가족과 친척들은 김 씨가 30여 년간 남편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저녁이면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동네 주변을 산책하는 등 극진히 병 수발을 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부검 결과 직접적 사인은 피해자가 마신 양잿물이었다며 그동안 피고인이 가정을 위해 헌신한 점으로 미뤄 볼 때 남편의 음독을 유도했다는 검찰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범행 직후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범행을 은폐하기보다는 자신의 범행을 소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며 원심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선처했다.

판결 직후 재판을 지켜보던 김 씨의 자녀들은 김 씨를 끌어안고 엄마, 이제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라며 흐느꼈다.



정효진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