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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초록의 기억

Posted June. 07, 200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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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 산과 나무가 푸르던 이맘때, 나는 한 뼘 남짓 배를 가르고 속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자 참기 어려운 통증이 엄습했다. 몸의 모든 세포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숨쉬기가 어려웠고 수술 자리와 튜브를 꽂은 코와 허리가 후비듯 아팠다. 희미한 빛, 소리, 냄새조차 견디기 어렵게 감각이 예민해져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진통제에 의지해 눈을 붙이려면 금속과 세라믹의 작은 악마들이 나타나 아픔과 싸우는 나를 비웃었다.

통증은 녹슨 쇠 같은 붉은 빛을 띠고 밀려 왔다. 그때마다 내 안의 생명력은 그 붉은 파괴자에 대항해 싸웠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나는 기를 쓰고 산과 나무를 떠올렸고, 그러면 마음의 화면에 초록빛이 가득 차오르면서 통증이 물러가고 평화가 돌아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붉은 혼돈은 집요하게 초록빛 평화를 지워 냈고 그때마다 쥐어뜯는 아픔이 다시 몰려 왔다. 이러한 전쟁이 한동안 계속됐다.

초록색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차 몸이 회복됐다. 보행기에 기대 병원 마당에 내려간 첫날, 나무의 푸른 잎사귀들은 얼마나 찬란했던가. 반면, 퇴원 길에 다시 만난 거리의 각진 모서리와 난무하는 색깔들은 수술 상처만큼이나 눈에 현실적인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예민했던 감각은 둔해졌다. 이제는 웬만한 혼란쯤은 무덤덤하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정상인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병상에서 체험한 초록의 기억만큼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손에 잡힐 듯 뚜렷했지만 깨어나자 무의식으로 숨어 버리는 꿈의 메시지처럼, 기억의 디테일은 이제 흐릿해지려 한다. 하지만 그 초록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의 의식과 관념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생명의 힘이며, 그 원천은 조화로움이라는 것, 그래서 조화로움을 파괴하는 것은 생명 파괴와 통한다는 깨우침이다. 힘든 시련이 안겨준 값진 선물로 알고 소중하게 간직하려 한다.

강 홍 빈 객원논설위원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학 hbkang@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