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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참전용사, 그 후

Posted April. 25, 200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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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찹, 크리스마스, 네바다, 글로스터 밸리, 펀치볼, 하트 브레이크.

외국 지명이 아니다. 625전쟁 때 격전이 벌어졌던 곳의 영어 이름이다. 모두 전사()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영어 지명은 유엔군의 깃발 아래 모였던 참전 16개국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 준다.

외국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고도의 외교 행위이다. 자국 젊은이의 피를 바쳐야 한다. 혈맹()이란 그래서 특별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터키를 방문했을 때 터키는 칸 카르데시(피를 나눈 형제국가)라는 말로 노 대통령을 환영했다. 그러나 혈맹국에 진 빚은 무겁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칠레 산티아고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귀로에 미국 하와이에 들렀다. 그러나 숙소 부근의 625전쟁 참전용사묘를 찾지 않았다. 미국의 군 출신 인사들이 섭섭해 했다는 말이 들려 왔다.

한 영국인 625전쟁 참전용사의 귀향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스콧 베인브리지 씨. 지난해 3월 71세의 나이로 숨지면서 한국에 뼛가루를 뿌려 달라고 유언했다. 백발의 전우들이 그의 유골을 안고 들어와 24일 그가 중공군과 맞서 싸웠던 경기 파주시 중성산 고지에 뿌렸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한국의 발전상에 깊은 감명을 받고 내가 한국 땅에 묻혀야 당시 흘린 피와 육신이 합쳐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을 떠나는 용사의 가족도 있다. 2002년 북한군과의 서해교전 때 전사한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 씨(33). 그는 같은 날 눈물을 흘리며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내가 바란 것은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사람들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애정이었습니다. 전사 또는 부상한 군인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가 계속된다면 과연 어느 병사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던지겠습니까. 베인브리지 씨를 불러들인 것도 한국이고, 김 씨를 떠나보낸 것도 한국이다. 김 씨의 행복을 빈다.

심 규 선 논설위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