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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역사를 만들었다

Posted February. 25, 200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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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원을 상상해보라. 색색의 아름다운 과일과 채소가 신선함을 자랑하고, 시냇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나는 새, 통통하게 살찐 짐승들이 시선을 유혹한다. 그런데 왜 악마의 정원인가? 이곳은 인간을 가장 원초적 욕망으로 자극해 다른 동물과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정원이며, 온갖 마법과 주술, 금기로 가득한 정원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바로 식욕의 정원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요리사 연극연출가 농장일꾼 등 다양한 경력을 거친 저자(미국의 저널리스트)는 다양한 문화권과 시대에 걸쳐 인간이 음식에 부여해온 욕망과 금기의 역사를 이 책에 쏟아 부었다. 문제풀이 형식을 빌려 저자와 함께 흥미로운 음식 모험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전통적인 시큼한 빵 맛에 익숙해 있던 파리 시민들. 아기 엉덩이처럼 말랑말랑한 빵 뺑 몰레가 등장하자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몇몇 제빵사들이 벨기에산() 효모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뺑 몰레는 비애국적인 품성을 심어주는 빵으로 낙인찍혔고, 파리 의학협회는 결국 이 빵을 금지했다. 하지만 뺑 몰레의 지지자들이 격분하는 바람에 정부는 금령을 해제해야 했다. 답은 부드러운 빵.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여자의 가슴 모양 위에 체리를 올려놓은 간식거리가 등장한다. minni di virgini 즉 처녀의 젖꼭지라는 이름의 이 패스트리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명령을 거절해 이교도들에게 유방이 잘리는 고문을 당한 뒤 죽은 성녀 아가타를 기린 음식이었다. 중세 미술작품에 아가타는 음식 접시에 자신의 유방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오늘날 유방암 환자들의 수호 성녀이기도 하다. 답은 젖가슴.

1800년대 중반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인 병사들을 엔필드 소총으로 무장시켰다. 기존의 총보다 정확하고 장전이 빠른 이 총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탄약통에 유지()를 발라야 했다. 영국인들은 돼지나 소의 지방을 썼는데, 돼지기름은 이슬람교도가, 소기름은 힌두교도가 거부했다. 병사들은 이 탄약통을 만지면 불가촉() 천민이 된다고 호소했고, 거부당하자 폭동을 일으켰다. 답은 기름.

중동 지역에는 레카노라 에스쿨렌타라는 지의류()가 자라는데, 이 식물은 사막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하늘에서 쏟아지기도 한다. 현지인들은 이 식물로 빵이나 젤리를 만들어 먹는다. 성서에는 고국으로 귀환하던 유대인들이 만나만 먹다 질려 불만을 토로하자 여호와가 메추라기를 보냈으나 이는 재앙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저자는 독풀인 사리풀을 먹은 메추라기를 유대인들이 먹고 복통을 일으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답은 이끼.

이탈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바질 잎을 딸 때는 솜털로 덮인 식물의 머리 쪽을 보며 자신이 아는 심한 말을 퍼부어댔다. 예부터 로마인들은 바질의 냄새를 맡으면 머릿속에 전설에 나오는 전갈인 바실리스크가 자라게 되지만, 심한 말을 해대면 이 기운이 힘을 못 쓰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달리 향이 강한 이 식물의 성분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기운이 들어 있기 때문에 생긴 전설이었다. 답은 욕.

오늘날 세계화의 영향으로 낯선 음식에 대한 신비감도 사라져간다. 음식은 더 이상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건강만을 위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숲 속 나무에 달린 열매 하나, 뿌리 하나, 들판을 달리던 작은 짐승 하나가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열광과 거부의 곡절이 있었던가. 최소한 이 책을 읽고 난 뒤라면 밥상이 예전과는 달리 보일 듯하다. 원제는 In the Devils Garden(2002년).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