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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물고 배우로 1등 할래요

Posted December. 22, 20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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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이어 SBS 수목드라마 유리화로 최근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는 이동건(24). 그가 내년 2월 4일 개봉예정인 로맨틱코미디 B형 남자친구(감독 최석원)로 영화에 사실상(2002년 영화 패밀리에 우정출연) 데뷔한다. 그가 맡은 영빈은 선물했던 장미꽃을 다시 가져가 되팔 정도로 계산이 빠른 B형 혈액의 소유자. 소심한 A형 여대생 하미(한지혜)에게 엽기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1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이동건을 만났다. 그는 나는 실제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실수에도 상처받는 A형이라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그는 단도직입적이었다.

1998년 가수 데뷔 후 고생 많이 했다고 하지만 있는 집 자식처럼 생겨서인지 하루아침에 왕자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무명생활이 길다가 확 올라가면 모르겠는데 굴곡이 심해 힘들었다. 가수 데뷔 때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갑자기 떨어졌고, 가수를 접으려 할 무렵 우연히 세 친구란 시트콤으로 또 주목받다가 다시 하강곡선을 탔다. 이번이 세 번째 상승곡선이다. 이번엔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이다.

맞다. 부침()이 잦으면 짜증난다.

꼭 줬다 뺏는 거 같으니깐.

이동건은 요즘 막바지에 이른 영화 촬영과 드라마 유리화 촬영이 겹치는 바람에 하루 1, 2시간밖에 못 자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다. 그는 살이 빠지고 다크 서클(눈 밑의 검은 부위)이 나타나며 동공이 커져서 눈빛이 풀려 보일까 걱정이라고 했다.

연기력은 진작부터 좋았는데 잘생긴 외모에 오히려 가렸던 것 아닌가.

나도 들었다. 얼굴 때문에 네 음악이 안 들렸고 얼굴 때문에 네 연기가 안 보였다는 말. 하지만 전부 나를 위한 변명이다. 말도 안 된다. 내가 노래와 연기를 진짜 잘했다면 외모는 몇 배 플러스가 되었겠지. 실력은 긴가민가한데 얼굴만 반반한 경우 그런 말을 듣는다. 네 멋대로 해라(MBC드라마2002년)에서도 내가 양동근, 이나영, 공효진 씨만큼 멋진 연기를 했다면 외양으로 그들이 줄 수 없는 뭔가를 자극했을 거다. 하지만 그들에게 영 못 미쳤다.

파리의 연인에서도, 유리화에서도 남녀 통틀어 극중 가장 아름다운 인물인 듯하다.

아름답다는 말은 기분이 좋은데. 예쁘다, 멋있다는 말 대신 아름답다. 내 캐릭터 때문일 거다. 나는 늘 다른 두 사람을 위해 가장 많이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가장 많이 사랑했다.

꽃미남 외모 때문인지 털털하고 적극적인 캐릭터의 여배우가 어울린다.

낯을 많이 가리고 사교적이질 못하다. 그래서 상대 배우까지 소심하면 너무 힘들다. 난 외모에 콤플렉스가 많다. 어릴 적부터 여자애 같다는 얘기를 심하게 많이 들었다. 요즘엔 좀 변했다. 턱수염도 길러보고. 턱을 괼 때도 손바닥으로 턱을 받치는 대신 주먹을 쥐어 턱 밑에 갖다대는 식으로, 아주 작은 포즈 하나에도 남자이려고 노력했다.

이동건은 남자다운 남자가 진짜 잘생긴 것이라며 잘생긴 남자 배우로 최민수, 이정진, 조한선을 꼽았다.

드라마에서 만난 상대 여배우들을 촌평한다면.

김하늘 씨(유리화)는 아직 모르겠다. 음, 프로페셔널한 분인 것 같다. 깊고. 김정은 씨(SBS 파리의 연인)는 편하다. 남을 배려할 줄 안다. 한지혜 씨(KBS2 낭랑18세)는 같이 있으면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힘들어도 아주 밝게 웃어주는 바로 그것 하나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껴안는다.

연기나 외모에 카리스마가 부족한데.

배우들은 서로 다른 칼을 갖고 있는 무사다. 사람들은 꼭 매섭고 날카롭고 단박에 상대를 베어버리는 칼을 카리스마라고 본다. 고정관념이다. 난 가지고 있는 칼이 다를 뿐이다. 아주 작지만 세밀한 칼이다. 내겐 상대를 제압하는 살기 어린 눈빛이 없다. 내 눈은 처졌고 내 눈은 착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조용히 관객을 울릴 수 있는 슬픔과 아픔이 있다.

노래와 연기 중 결국 연기를 택했다.

주목받은 최근 2년 정도를 제외하면, 난 가수도 배우도 아니었다. 나에게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를 써줬지만, 모든 걸 다 잘 해야 만능 엔터테이너이지 나처럼 이것저것 해봤다고 해서 만능 엔터테이너는 아니지 않은가. 별의별 것 다 해봤지만 돌아온 건 아무 수식어도 없는 이동건일 뿐이었다. 이를 악물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번 1등 해보자 이런 생각으로. 가수할 때는 음반에 피해가 갈까 봐 피하고 피했던 게 연기인데, 정작 나를 알린 건 세 친구라는 시트콤이었다. 연기는 내가 발로 차면 찰수록 자꾸 나에게 다가와 뭔가를 안겨줬다. 내가 꿈꿔왔던 건 노래지만 나의 운명은 연기일지 모른다.

최고 인기인데, 고민도 있나.

2년간 잃은 게 너무 많다. 오직 작품 안에서의 내 캐릭터만 남았다. 스물셋에서 스물다섯 살까지의 이동건이라는 애가 한 일이라고는 촬영장에서 촬영한 거밖에 없다. 가슴 한 구석이 숨 막히고 미치도록 허전하다.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장미 한 다발 사주는 것, 그런 행복이 그립다. 찾고 싶다.

애인은 있나.

(잠시 생각하다가) 없다. 난 애인이 생기면 다른 연예인들처럼 무슨 죄진 것처럼 비치긴 싫다. 난 떳떳할 거고, 마음껏 사랑할 거다. 내 인생을 즐길 거다. 내년에는 영화 한 편 출연으로만 활동을 자제하고 배우의 길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잃어버렸던 스물다섯 살 이동건을 되찾겠다.



이승재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