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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은 먹고살 권리

[사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은 먹고살 권리

Posted December. 10, 200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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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생명과 생존이 가장 중요한 명제이며 정치와 예술은 두 번째라고 말했다. 힘겨운 시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반추()해 볼 만한 원로 작가의 말이다.

어제는 56번째 맞이하는 인권의 날이었다. 헌법상 권리인 생명권은 모든 기본권의 핵심이고 그 기초가 된다. 생명권과 생존권은 인간답게 먹고살아 갈 권리를 말하며 세계인권선언에 나오는 궁핍으로부터의 자유에 해당한다. 생명과 생존이 없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는 공허할 뿐이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분배를 강조했지만 서민이 겪는 경제적 현실은 참혹하다. 성장 엔진이 스톱 상태에 다다르면서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몰락하고 있다.

경찰관 아버지가 야근하고 어머니는 신문 배달을 나간 사이에 3남매가 불에 타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일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사회적 낙오자가 되고 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성장률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생이라며 국민은 고용 없는 성장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고통이 5년, 10년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민의 생존이 위협받는 고통의 긴 터널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맹자()는 정치의 첫걸음이 백성의 의식주()를 만족하게 하는 민생에 있다고 역설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민생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혁 이데올로기에 함몰돼 있다. 국회는 연일 격돌로 지새우며 국민을 우울하게 한다. 외국기관이 조사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중위권 밖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명과 생존은 기본권 질서의 논리적인 기초이다. 생존권을 전제로 신체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도 보전되는 것이다. 민생을 돌보지 않는 정치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민의 생존, 즉 민생이 보장되지 않은 개혁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