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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삼성 반도체 30년

Posted December. 07, 200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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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반도체 웨이퍼 가공회사는 강기동 박사가 1974년 설립한 한국반도체였다. 강 박사는 미국 모토로라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으나 1년도 안 돼 자금난을 맞았다. 이때 이 회사를 인수한 사람이 당시 동양방송 이사이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이 회장의 결정은 삼성 경영진 내부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1983년 반도체사업 본격화를 선언했을 때도 무모하다는 것이 국내외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평가가 무모한 도박에서 과감한 결단으로 바뀌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1983년 64K D램을 처음 개발했을 때 세계 최고와는 4년 반의 기술격차가 있었다. 그러나 1984년에 3년, 1986년에 2년, 1988년에 6개월로 줄더니 1989년에는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마침내 1992년에는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D램 분야 부동의 1위로 올라섰다. 지난 30년 동안 삼성은 110조 원어치의 반도체를 팔아 29조 원의 이익을 거두었다.

삼성전자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멸시를 참아 가며 선진기술을 배우고 창의성을 보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일궈 낸 연구진, 좀 더 좋은 제품을 더욱 싸게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땀 흘려 온 근로자들의 공이 크다. 하지만 이런 바탕이 있었다 해도 최고경영자의 과감한 투자결정이 없었다면 반도체산업은 싹조차 틔우지 못했을 것이다. 계열사간 투자와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인텔사의 앤디 그로브 이사회 의장은 1994년 국내 신문 인터뷰에서 삼성전자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으로 기술력과 함께 다른 계열사가 뒷받침하는 자금력을 꼽았을 정도다.

경영학 용어에는 풍기는 이미지가 정반대지만 실체는 같은 말이 적지 않다. 오너 경영자의 과감한 리더십을 나쁘게 말하면 황제경영이 된다. 문어발 경영은 사업 다각화의 동의어다. 계열사간 자금력 공유를 누구는 효율적인 자본 이용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동반부실의 씨앗이라고 한다. 그 양면을 모두 보지 않고 부정적인 쪽만 보는 이들에게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아닐까.

천 광 암 논설위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