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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계사

Posted November. 22, 200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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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다녀왔다. 첫날 버스를 타고 옥류동()으로 들어가다가 오른쪽 송림() 너머로 복원공사가 한창인 신계사()를 보았다. 쭉쭉 뻗은 미인송()들이 절터를 발처럼 가린 위로 아직 단청을 안 한 대웅전 처마가 맨살을 드러낸 채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남북이 함께 절을 짓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졌다.

신계사는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로 625전쟁 때 소실되기 전만 해도 11개의 전각을 거느렸던 큰 절이었다. 통일신라 법흥왕 6년(519년)에 보운() 조사가 창건했다. 원래 이름은 신라()의 신()자를 따 신계사()였으나 곧 귀신 신()자 신계사()로 바뀌었다. 해마다 절터 계곡을 따라 연어가 올라오면 사람들이 몰려와 연어를 잡았는데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도로서 이를 보고만 있기 어려워 보운 조사가 신통력()으로 연어 떼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해서 신()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신계사 대웅전 낙성식이 20일 있었다. 남측 조계종과 북측 조선불교도연맹, 현대아산 관계자 등 400여명의 참석자들은 신계사 복원이 민족화합과 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기원했다. 남북 양측은 2007년까지 명부전을 비롯한 11개 전각을 모두 복원할 계획이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신계사) 대웅전에 자금광()을 발하니 백두에서 한라까지 비추고 동서로 뻗어 천하를 덮는다. 어두운 사람에겐 남북이 있으나 눈 밝은 사람에겐 상하조차도 없다는 내용의 낙성식 기념 법어를 내놓았다.

법어의 뜻이 의미심장하다. 어두운 사람에게 남북이 있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아직도 극단적인 냉전사고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1980년대 남북 불교 교류를 위해 북에 들어간 남측 스님들을 북측 관계자들은 중 선생이라고 불렀지만 요즘은 스님이라고 부른다. 북한 절에 가면 가사 입고 참배하는 북측 스님들의 모습도 더러 볼 수 있다고 한다. 더디게 느껴질지 모르나 변화는 그렇게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재 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