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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넘나든 4년 아들아 꼭 일어나렴

Posted July. 18, 2004 22:16,   

생사 넘나든 4년 아들아 꼭 일어나렴

# 하늘이 무너졌다

2000년 3월. 만 3세 된 영길이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렸다. 환한 웃음이 트레이드마크인 탤런트 김명국씨(40)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하늘을 원망하며 술을 퍼부었다. 그러나 절망은 희망을 밀어낼 뿐.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의사는 골수이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골수에 있는,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혈액 공장인 골수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였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골수 기증자를 찾을 수 없었다. 기증자가 나타나도 유전자 조직이 맞을 확률은 2만분의 1 정도. 급한 대로 항암제 투여를 먼저 시작했다.

암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반복되는 입원과 퇴원. 면역이 약해진 영길이는 감기만 걸려도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을 잃었다. 한밤 중 응급실로 향하는 119 차량 안에서 김씨 부부의 속은 타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길이의 몸에서 암세포가 사라졌다. 영길이는 다시 학원에 나갔고 쾌활해졌다. 그러나 김씨는 알고 있었다. 암은 5년이 지나야 완치 판정이 내려진다는 것을.

이런 우려는 2003년 5월 현실이 돼 버렸다. 영길이의 몸에서 다시 암세포가 발견된 것. 눈앞이 캄캄해졌다. 공든 탑은 와르르 무너져 밑단을 드러냈다. 이제 방법은 골수이식밖에 없었다.

4개월 뒤 김씨는 골수기증을 호소하기 위해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낮에는 50도가 넘어 모래바닥이 펄펄 끓었고 밤에는 0도 이하의 혹한이 계속됐다. 그러나 그는 매일 4050km씩 6박7일간 묵묵히 달렸다.

그래도 골수 기증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씨는 출산할 때 나오는 탯줄혈액인 제대혈에도 조혈모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산부인과를 돌아다녔다. 대학로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제대혈 기증을 호소했다. 그에게는 제대혈 전도사란 별명이 붙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올해 2월 영길이의 조직과 일치하는 제대혈을 구했고 비로소 수술에 들어갔다.

# 희망은 살아있다

수술은 성공이었다. B형이던 영길이의 혈액형은 기증자를 따라 A형으로 바뀌었다. 보통 조혈모세포를 이식했을 때 혈액형은 기증자의 것으로 바뀌지만 종전의 혈액이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증자의 혈액형 비율이 높을수록 성공한 것으로 본다. 지금 영길이의 원래 혈액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이식 후 2, 3년이 지나도록 A형이 유지돼야 확실한 성공이기 때문이다. 주호라는 이름을 영길로 바꾼 것도 이 무렵이다. 영원히 건강해라()란 뜻이란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얼마 전부터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다. 면역력이 떨어지자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한 것이다. 영길이는 하루에 네 번 3040분 호흡기를 사용해야 한다.

면역억제제를 하루 두 번씩 먹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얼굴 여기저기에서 털이 자라는 부작용이 더 싫었다. 항생제는 시도 때도 없이 복용해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폐 X선을 찍어야 한다.

치료비용도 만만찮다. 그동안 들어간 돈만 3억4억원에 이른다. 앞으로 얼마가 더 들어갈지 예상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영길이는 밝다. 김씨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는 게 대견하고 고맙단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실을 찾는 김씨 역시 밝다.

김씨는 영길이가 건강해지면 온 가족이 함께 초밥과 회를 먹고 싶다고 한다. 지금 영길이는 날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처음에는 영길이만 염두에 뒀어요.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어요. 영길이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많은 어린이의 희망입니다. 내 인생 모든 걸 걸고서라도 영길이를 반드시 건강하게 만들고 말겁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꼭 힘겨워서 만은 아니다. 그것은 희망의 눈물이었다.



김상훈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