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때의 일이다. 일일교사로 찾아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의 질문을 받았다. 제가 한 여학생을 좋아하는데 제 친구도 그 애를 좋아해요. 사랑과 우정 중에서 뭘 선택해야 하나요? 대통령이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내 쟁취해야지요.
웃음이 터지는 얘기지만 곱씹어 볼 대목도 없지 않다. YS는 사랑도 민주화투쟁처럼 쟁취하는 것으로 여긴다든지, 사랑이라는 개인적 혹은 절대적 가치를 우정 신의 같은 집단적 가치보다 중시한다든지. 지금쯤 성년이 됐을 그 초등학생은 대통령의 가치관까지 엿볼 수 있는 답변을 끌어낸 탁월한 질문자였던 셈이다. 엊그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한테 그 못지않은 질문을 던진 여고생이 등장했다. 정 의장의 일일교사 특강이 끝난 뒤 질문 받는 시간에 수줍게 손을 들고 물었다는 거다. 그런데 어떤 일 하세요?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해석이 복잡하게 나돌고 있다. 첫째는 알고도 물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정 의장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올해 최고 유행어를 능가하는 코미디라는 찬사가 뒤따른다.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인이 뭘 하고 있나를 따지는 심오한 철학과 힐책이 담겼다는 분석도 있다. 네티즌들은 나도 정 의장이 뭘 하는지 모르겠다. 재래시장에 자주 가는 걸 보면 슈퍼마켓 차리려는지라며 이벤트 정치를 꼬집거나 나도 모든 정치인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식의 정치 허무주의적 반응으로 여고생의 거사에 동참 중이다.
다른 갈래의 해석은 여고생이 정말 모르고 물었다는 것이다. 문상객이 한참 울고 난 뒤 그런데 누가 돌아가셨나요? 하는 꼴이다. 이 경우에도 주제 파악을 잘하자는 수학능력시험용 교훈이 나올 수 있다. 정치에 대해선 연예스캔들 절반 정도의 관심도 없는 학생들이나, 청중의 눈높이 파악은커녕 자기소개도 제대로 않고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 정치인이나, 누가 티코냐 리무진이냐 가릴 것 없이 오십보백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기만 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가끔 멈춰 서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그런데 어떤 일 하세요, 지금?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