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청탁을 하다 걸리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고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확고한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표현이 다소 격하다. 말 그대로라면 법치의 한계를 벗어난다. 위법행위도 법에 정해진 이상의 책임을 지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패가()를 언급한 것은 구시대의 연좌제마저 연상케 한다. 특별세무조사까지 실시해 살아남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말도 세무조사를 처벌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느낌이다.
물론 노 당선자가 이렇게 얘기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청탁문화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인사청탁 이권청탁 수사청탁에 이르기까지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청탁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을 지경인 것이다. 거기엔 반드시 검은 뒷거래가 따른다. 현 정권 하에서 터진 각종 게이트도 그랬듯이 모든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는 청탁과 연결돼 있다.
우리 사회의 기회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부정한 청탁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가를 전제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청탁의 속성상 적발과 응징은 쉽지 않다. 청탁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권력의 토양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종횡으로 촘촘히 얽힌 연고주의를 혁파해 청탁의 통로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 우선이다.
결국 다시 측근정치와 정실인사의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권력집단 내에서 영향력이 큰 실세가 있으면 자리나 이권을 탐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연고를 동원해 접근하는 게 상례다. 그리고 형님 동생 선배 후배 하면서 서로 어울리다 보면 신세를 지고 갚고 하다가 청탁과 보상의 그물에 걸려들 가능성이 크다. 권력에 취하면 유혹에 약해지게 마련이다.
벌써부터 선거공신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멤버를 비롯한 새로운 권력집단 주변에 공무원 줄서기가 극심하고 온갖 청탁이 쇄도한다니 걱정이다. 노 당선자는 청탁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먼저 측근들의 제 사람 심기나 인사청탁부터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