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하멜의 숨결' 깃든 강진

Posted September. 04, 2002 22:24,   

\

349년전(1653년) 제주도. 난파선 스페르베르호(네덜란드 동인도회사소속 상선)의 항해서기 하멜은 동료 35명과 함께 여기 발을 디딘다. 이 단순한 표류사건. 이것이 조선을 당시 세계의 중심인 유럽땅에서 최대의 관심국가로 띄워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2년의 히딩크감독처럼. 그것은 15년후 네덜란드에서 발간된 그의 항해일지 덕분이다. 당시 이 책은 영어 독어 불어 네덜란드어로 발간돼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팔리며 조선을 세계의 중심에 올려주었다.

일본 나가사키(규슈)의 화란 상관()을 찾아가다가 표류한 하멜일행. 그들은 자신들이 상륙한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았다. 억류된 이들을 조사하기 위해 도성에서 통역이 내려왔다. 놀랍게도 그 역시 화란인. 26년 앞서 조선땅을 밟은 벨테프레였다. 보고에 접한 효종은 일행을 도성에 들인다. 이렇게 해서 이뤄진 하멜의 조선여행길. 반도에서 여행의 시작은 땅끝 해남(전라우수영)에서 이뤄졌다.

영암 나주 장성을 거쳐 입암산성 정읍 태인 전주 여산을 경유, 공주를 지나 남대문으로 이어진 14일간의 여정. 효종의 궁중연회에 초청된 이들은 임금행차때 어가를 호위하는 친위대격인 호련대의 외인부대에서 2년간 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전라병영(전남 강진군 병영면)에 유배되고 예서 7년을 지낸다.

병영은 강진과 영암의 중간. 일행은 각자 집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일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효종이 하사한 쌀로 연명하며 관아에서 노역도 했다. 흉년들면 걸식으로 연명하고 배로 섬을 오가며 장사도 했다. 청어를 소금에 절여 먹는 네덜란드식 청어절임도 알려주었다.

그런 역사가 깃든 병영. 영암 강진에서 835번 지방도로 갈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하멜의 유산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특이한 돌담이다. 일정한 패턴으로 황토흙을 비벼 넣고 쌓은 돌담. 하멜식 담쌓기라 불리는 이 돌담은 동네 곳곳에 있었다. 하멜일행이 모여 살았다는 은행나무 정자 옆 개천가에도 있다. 보수공사가 한창인 병영성이 제 모습을 찾고 나면 이 돌담에 대한 고증도 이뤄지리라.

지척의 영암은 하멜일행이 상경길에 동료 한 명의 주검을 묻고 간 곳. 병영에서는 3년가뭄 끝에 일행중 11명이 숨졌다. 전라병영은 남은 22명을 순천 여수 해남에 분산수용했다(1663년). 하멜의 조선탈출은 이때 준비된다. 이듬해 어선을 구하고 억류 13년만인 1666년 8명은 여수에서 썰물을 타고 탈출한다. 336년전 어제 9월 4일의 일이다. 조선 억류 13년만, 세 번째 탈출시도였다. 그리고 이틀후 일본 히라도섬에 도착한다. 묘한 인연이다. 히딩크감독이 다시 한국을 찾은 날이 하멜이 조선을 세계에 알려준 하멜표류기의 탄생일인 것은.

여행정보하멜이 지났던 해남 강진 영암은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기 좋은 코스. 해남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미황사, 땅끝전망대가 있고 보길도로 하루코스로 돌아볼 수 있다.(8월 29일자 C8면 You&Me 참조) 강진청자마을, 만덕산 백련사와 다산초당등이 있다. 영암산세 멋진 월출산에 도갑사가 있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