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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메이저리그의 논리

Posted November. 07, 20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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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도 테러 참사의 충격을 피할 순 없었다. 마이너리그의 대부분은 포스트시즌을 생략한 채 한 해 일정을 서둘러 끝냈고, 메이저리그 또한 예정보다 1주일 가량 늦게 월드시리즈를 마쳤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공군기가 피닉스와 뉴욕 상공을 경계 비행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야구의 존재 가치는 모처럼 돋보였다. 페넌트레이스 종반에 테러 사태를 맞은 금년도 메이저리그는 배리 본즈가 경신한 시즌 최다 홈런, 시애틀 매리너스가 수립한 역대 최다승 타이 기록 등을 통해 미국인의 상심을 적잖이 위로했다. 경기 내용과 승패를 떠나 프로야구는 그 자체로서 미국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국민적 단결을 도모하는 데 크게 공헌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시즌 경기 내내 7회 공수 교대 사이에는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가 울려 퍼졌다. 특히 9월 11일 아침 세계무역센터에 게양되어 있다가 무참히 공격당한 성조기를 양키스 구장에 옮겨 놓고 진행된 월드시리즈 3차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등판한 모습은 미국의 건재와 의지를 알리는 국가적 의식이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이 던진 볼은 스트라이크였다.

미국에서 야구는 사실상 국기()다. 미국에서 봄의 첫날은 프로야구 개막일이며 겨울은 월드시리즈가 끝난 다음날부터 시작된다. 남북전쟁과 산업혁명 이후의 미국 역사와 프로야구의 성장 과정이 겹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선 야구경기에는 미국의 역사 및 문화적 특성이 깊이 용해되어 있다. 합리적 경기규칙과 공정한 판정은 법의 지배 원칙과 상응하고, 두 팀간 이닝 수의 제도적 양분은 기회균등 이념에 필적하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화 초기 과정의 노동자들에게 대중적 레저를 제공한 프로야구는 계급갈등을 순화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연고제에 기초한 스포츠 경쟁을 통해 남북전쟁 이후 국민적 단합을 증대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흑백통합은 1960년대 말 민권운동이 본격화하기 20여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프로야구는 미국생활을 배우고 익히는 교과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점에서 메이저리그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선양하면서 미국 시민을 하나의 공동체로 연대하는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미증유의 테러 충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자신의 사회적 기능을 새삼 부각시킨 메이저리그의 속사정은 그러나 알고 보면 주름살로 가득하다.

최근 10년 가까이 야구장을 찾는 팬은 계속 감소해 왔으며 프로야구 중계방송의 시청률은 미식축구는 물론 농구에 비해서도 뚜렷이 낮아졌다. 경기시간의 장기화, 지명대타제의 도입, 성가신 상업광고 등 구구한 원인 분석 가운데 역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팀간의 전력 우열이 처음부터 확연해 게임 자체가 싱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빈익빈부익부가 초래한 당연한 결과이다. 예컨대 가장 부유한 팀과 가장 영세한 팀간의 예산 차가 10년 전의 4 대 1로부터 작년에는 20 대 1까지 늘었고, 소속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7위 이하인 메이저리그 구단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경우는 1995년 이후 한번도 없었다. 결국 메이저리그가 독점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인기 침체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대안으로 최근 부쩍 활발해진 것이 메이저리그의 세계화이다. 메이저리그의 시장개척은 이제 전 지구촌을 겨냥하고 있으며 양질저가()의 수입선수들이 제공하는 흥행과 수지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나 미국 야구의 제국주의적 세계 지배가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는 미지수다. 각국의 유능한 선수들을 메이저리거로 등용한 다음 이들을 통해 메이저리그를 세계 전역에 전파하는 대가는 이미 주변부 지역 야구시장의 위축과 황폐화로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메이저리그의 장기구조적 재생산에 불리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백스의 막내 스타 벼엉현 킴의 치욕과 영광에는 메이저리그의 빛과 그림자도 함께 실려 있다.

전상인(한림대 교수,사회학,현 미국 워싱턴대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