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륜범죄 혐의로 기소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대통령이 3일 오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의 국제전범재판소(ICTY) 법정에 출두했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처음 열린 이날 예비심리에서 ICTY는 불법이며 (나에 대한) 기소 역시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재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따라서 변호인을 지명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리처드 메이 재판장이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에게 당신의 기소혐의를 듣기를 원하는냐고 묻자 밀로셰비치는 그것은 당신의 문제라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밀로셰비치는 이어 당초 계획했던 이번 재판의 불법성 등을 내용으로 한 성명을 발표하려 했으나 메이 주심판사의 발언중단 조치로 거부됐으며 첫 심리는 10분 만에 끝났다. 두 번째 심리는 8월 마지막주에 재개될 전망이다.
전직 국가원수로는 처음 ICTY 법정에 선 밀로셰비치는 변호인 선임을 거부한 데 이어 재판장의 질문에 답변 자체를 냉소적으로 거부하는 등 재판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
앞서 밀로셰비치와 처음으로 만난 첸코 토마노비치 변호사는 면담 후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변호인단을 선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짐 랜데일 ICTY 대변인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유무죄 여부를 묻는 인정신문에 답변을 거부할 경우 법정은 30일을 주며 이 기간중 서면으로 진술하지 않으면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간주해 재판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이번 재판은 전직 국가원수의 반인륜범죄를 유엔 차원에서 응징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나 밀로셰비치의 재판 불인정 전략으로 향후 재판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밀로셰비치의 재판 전략과 구명운동은 부인 미라 마르코비치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코비치는 이번 재판을 법리다툼보다는 정치적 공방으로 이끌고 간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것. 밀로셰비치가 과거 영국 프랑스 등 서방측이 자신과 맺은 밀약들을 공개하겠다며 협박한 전술도 마르코비치의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밀로셰비치측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유고 연방에서 분리되는 과정 등에서 미국과 영국이 밀로셰비치와 맺었던 밀약을 폭로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 사이러스 밴스 전 미국국무장관, 더글러스 허드 전 영국외무장관 등을 증인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워싱턴 타임스지가 2일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2일 유고 수도 베오그라드에선 1만5000여명의 밀로셰비치 지지자들이 연방 의사당 앞에서 새 총선을 실시하라고 외치면서 세르비아 공화국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