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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일기업 배상의무 있다

Posted May. 25, 201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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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번 판결은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동일한 소송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패소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 판결은 일제 식민지배로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등에서 제기한 여러 건의 소송에서 처음으로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여운택 씨(89) 등 강제징용 피해자 9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24일 사건을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따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는 일본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과 2007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는 합법적이기 때문에 일본이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국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또 2009년 한국의 부산고법과 서울고법 등에서 내려진 항소심 선고에서는 대한민국 법원이 일본 판결의 효력을 승인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위반되지 않고, 민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은 일제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패소 확정 판결을 승인할 수 없고 일제강점기 때 징용을 했던 구() 미쓰비시와 현재의 미쓰비시, 구 일본제철과 현재의 신일본제철의 동일성이 인정되며 한일청구권협정 체결로 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고 민사상 채권청구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4가지 핵심 이유를 들었다.

앞으로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는 특별한 쟁점이 다시 돌출되지 않는 한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원고 승소로 판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파기환송심에서는 원고들이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한 1억1억100만 원 가운데 배상액을 정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군인과 노무자 등으로 강제 징용을 당해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된 우리 국민은 전국적으로 22만483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판결이 내려지자 강제징용 피해자 모임인 일제피해자공제조합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만시지탄()이지만 전범기업에 철퇴를 내린 오늘은 제2의 독립일이자 일본에 대한 사법주권을 다시 세운 날로 기록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신민기 김성규 minki@donga.com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