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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자수 심리전 시작되다

Posted December. 16, 200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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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영화가 지배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가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스릴러 영화 H [에이:치]는 한국 영화가운데 드문 장르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긴장을 켜켜이 쌓아 가는 스릴러를 잘 만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동시에 보여준다. 중반부까지 비슷한 사건들만 계속 일어날 뿐 줄거리 전개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마땅히 던져져야 할 의문과 복선이 새어 나가버리고 만다.

해맑은 표정의 청년 하나가 시경 강력반 사무실에 제 발로 걸어들어와 시체가 든 백을 내던지고 자수한다. 이 청년은 6건의 연쇄 살인사건을 저지른 신현 (조승우). 신현을 잡았다가 놓아준 적이 있는 한형사(이얼)는 청년의 난데없는 자수로 인한 충격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1년 뒤, 혼외 임신으로 아이를 가진 임산부들이 잇따라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들의 특성과 살해수법이 1년 전 신현의 연쇄 살인 사건과 똑같다는 점을 포착한 형사 미연(염정아)과 강형사(지진희)는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수감중인 신현을 찾아간다.

수감된 연쇄살인마가 사건의 단서를 쥔 채 감옥 밖의 살인 사건을 조종하며 형사가 그와의 심리전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점에서, 이 영화는 양들의 침묵과 비슷하다.

그러나 대립하는 쌍방의 기가 너무 약한 것이 문제. 시종 선문답같은 문어체 대사로 일관하는 신현의 허약한 카리스마는 감옥 밖 살인자들이 왜 그를 추종하는 지 모호하게 만든다.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엄숙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염정아의 연기도 부자연스럽다.

영화 중반부에 느닷없이 나타난 정신과 의사 추박사 (김선경)는 신현의 정신 감정을 맡았고 감옥 밖 살인자들과도 연계되어 있어, 비중이 적지 않은 역할. 그러나 야릇한 표정으로 계속 웃기만 하는 탓에 극의 전개상 중요한 역할이 훼손돼 버리고 말았다. 18세이상 관람가. 19일 개봉.



김희경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