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이 된 1400원 중반대 환율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휘발유와 경유 등이 포함된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6.3% 뛰었다. 국제유가 자체는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석유류 가격이 오른 건 환율이 100원 넘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45.6원(오후 3시 반 종가 기준)으로 1년 전보다 114.2원 상승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부터 월평균 환율은 1436원에서 1455원 사이를 오갔다.
재료 가격이 오른 데다 환율까지 고공행진하면서 식품 업체들의 가격 인상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17일부터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을 1000원으로 50원 올리기로 했다. 새우깡도 100원 인상돼 1500원을 줘야 한다. CJ제일제당은 이달부터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스팸 가격을 9.8% 인상했다. 소시지, 만두 등 일부 제품 가격도 올렸다. 제과 업체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이미 지난달 소보루빵 등의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다.
치솟은 환율의 영향이 물가에 다 반영된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환율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 변동 후 9개월이 될 때 가장 커졌다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처럼 환율이 크게 올라 3개월 이상 지속됐을 때는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밀어 올리는 폭이 더욱 컸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가격 인상에 나서는 업체는 더 늘어나고,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나섰지만 말발이 안 먹힌다. 지난달 중순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차관은 잇달아 식품, 외식 업체들을 만나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가격이 오르는 가공식품 목록은 연일 늘어만 난다. 계엄·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그립’이 약해진 틈을 타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식품 업체들은 앞다퉈 가격을 올렸다.
1년 8개월 전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당시 정부가 주원료인 밀 가격이 떨어졌다며 라면 가격을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라면 업체들은 13년 만에 값을 내린 바 있다. 밀 가격은 떨어졌지만 그때도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안팎을 보이며 전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지난달 국제 밀 평균 가격은 t당 212달러(SRW 기준)였는데, 2023년 7월에는 그보다 높은 249달러였다. 이달부터 라면 가격을 올리면서 환율과 원재료비 상승을 이유로 꼽았지만 원재료비가 모두 오른 건 아니다.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 가구의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난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가 식비로 쓴 금액은 전체 가처분소득의 45%에 달했다.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구는 이 비중이 15%에 불과했다.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이 무색해진 만큼 저소득 가구의 부담을 덜어줄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밥값이 부족한 이들이 라면마저 못 먹는다는 말은 안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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