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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가 마주한 두 개의 전선

Posted August. 14, 2020 07:35   

Updated August. 14, 202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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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작전을 떠올리게 하는 방역 대책.’

 중부유럽 표준시(CET) 오후 8시 50분, 감염되지 않은 공을 골라 배치한다. 8시 53분,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나선다. 8시 57분, 선수들이 운동장에 들어선다. 이때 각 선수들은 1m 간격을 지켜야 한다. 관중은 없다. 8시 57분, 50초간 선수들의 단체 촬영을 시작한다. 8시 58분에 동전을 던져 팀 위치를 정한다. 9시 경기 시작.

 미국 뉴욕타임스가 최근 전한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매뉴얼 중 일부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FC바르셀로나와 독일 바이에른 뮌헨 등 5개국 8개 팀이 8강전을 치르고 있는 이 대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맞서기 위해 분 단위로 짜인 일정 속에 열리고 있다. 각 팀 선수들은 각자 자기 나라에서 출국하기 전 한 번, 리스본에 도착한 뒤 또 한 번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결과는 경기 6시간 전까지 제출돼야 한다. 각 팀이 묵는 숙소는 물론이고 훈련장 내 훈련구역까지도 미리 지도로 표시돼 제공됐다. 땀 흘릴 수 있는 운동은 잔디 밖에서 해야 하고, 특히 골대 입구 쪽 잔디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실제 경기가 열릴 때를 대비해 잔디가 감염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또 팀별로 130쪽에 이르는 각종 규정 및 설명사항이 전해졌다. 경기장 내에는 각 팀 스태프 등 최소 인원만 들어갈 수 있도록 했으며, 구역별로 출입 인원을 정해 최대 120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릴 수 없도록 했다.

 이같이 세세하고 엄격한 규정들은 코로나19 확산 속에 대회를 치르는 UEFA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분 단위까지 선수들을 통제하려는 건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는 축구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대회 중 하나다. 하지만 혹여 단 한 명이라도 대회 중 감염사태가 일어난다면 대회 인기와 관계없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이 각각 다른 나라의 선수들을 모아 대회를 치러야 하는 UEFA는 흥행 못지않게 안전을 주목표로 삼고 있다. 참가자들이 코로나19에 노출되지 않도록 감염자 없이 경기를 치는 것이 대원칙이다. 팀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해 선수단을 꾸릴 수 없을 경우 0-3 몰수 패 처리하기로 했다. 선발 출전 선수 11명과 후보 선수 2명 등 13명을 꾸릴 수 없는 경우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속에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는 각 팀이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하는지도 우승을 둘러싼 중요한 변수다.

 원칙대로 하자면 코로나19가 가라앉을 때까지 대회를 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각종 TV중계권 및 다양한 산업과 연결된 현대 스포츠의 속성상 마냥 경기를 쉴 수는 없다. 그렇게 될 경우 다음 대회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수입구조가 뒤틀려 대회의 존립이 흔들린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대회를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말로 이 시대 스포츠 행사들이 처한 어려움을 나타낸다.

 UEFA는 대회를 강행하되,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과거 3개월에 걸쳐 치렀던 8강, 4강, 결승전을 압축해 13일부터 24일까지 3주 내에 끝내기로 했다. 또 각 팀의 연고지를 오가며 1, 2차전을 치르던 8강전과 4강전도 모든 팀이 한곳에 모여 단판 승부를 치르는 형식으로 바꿨다. 최대한의 통제가 가능하도록 한곳에서, 최대한 빨리 경기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점들은 오늘날 스포츠 행사를 둘러싸고 얼마나 치밀하고 대규모의 방역전선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해당 전선에는 참여자 모두의 장기적 생존이 걸려 있다. 더 이상 스포츠 행사가 열릴 수 없게 되면 큰 타격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참가자들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우승을 향한 그라운드 위의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코로나19와의 전선이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자신과 팀의 우승을 위해 겨뤄야 하겠지만 방역 전선에서는 개별 승패가 아닌 모두의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이원홍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