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이가 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무릎 꿇고 사죄하라.”
17일 오전 8시 반 일본 도쿄 외무성 앞.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91)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죄 한마디 없이 75년이 흘렀다’는 현수막을 든 50여 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 이행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갈아가며 촉구했다.
매주 금요일 외무성과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도쿄 지요다구)에서 열리는 이 집회의 이름은 ‘금요행동’이다. 한국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위해 일본 시민단체 회원 및 변호사 등이 2007년부터 열어온 이 집회가 이날 500회를 맞았다. ‘수요시위’에 착안해 시작된 집회는 그간 근로정신대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날 500회 집회는 일본 전국 각지의 일본 시민단체 회원뿐 아니라 양 할머니를 비롯한‘미쓰비시 근로정신대 광주소송 변호단’ 등 한국 시민단체 회원 20여 명도 참석했다. ‘한일 연대’ 형태로 진행된 셈이다.
아베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 앞으로 면담 요청서를 보낸 이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직접 방문해 대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 할머니가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관계자를 만난 것은 약 10년 만이다.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그동안 법정 소송 중이라며 피해자 측과 면담을 피해왔다.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측과의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75년이 지나도 사죄가 없다”며 “올해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나의 억울함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500회 동안 집회를 이끌어온 일본의 양심 세력 상당수는 70세 이상 고령자들로 대체로 건강이 좋지 않다.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참가자도 있다. 우익 세력의 협박 등 숱한 어려움 속에서 집회를 이끌어 온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단체’ 공동대표는 “한국 시민단체들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이끌어 냈다”고 했다. 같은 단체의 데라오 데루미(寺尾光身) 공동대표는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 돼 금요행동을 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