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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개선에 기여 ‘日보수의 원류’

한일관계 개선에 기여 ‘日보수의 원류’

Posted November. 30, 2019 07:47   

Updated November. 30, 2019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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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일본에서 ‘전후(戰後) 정치 총결산’을 내걸고 5년간 내각을 이끈 ‘일본 보수의 원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교도통신과 NHK는 이날 오전 7시 22분경 도쿄의 한 병원에서 나카소네 전 총리가 숙환으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1918년 5월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도쿄대 법학부 졸업 후 내무성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종전 직후인 1947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자민당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과학기술, 방위, 운수, 통산 등 분야에서 장관을 지냈으며 자민당 내부에서 총무회장, 간사장 등 요직도 맡았다. 1982년 11월부터 1987년 11월까지 5년간 일본 내각 총리(71∼73대)를 지내며 국철, 담배 등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기업의 민영화, 증세 없는 재정 재건 등 행정개혁에 나서면서 당시 ‘대통령급 총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총리 재임 기간은 1806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등에 이어 역대 5번째로 길다. 20선 중의원 기록을 가진 고인은 2003년 정계를 은퇴했다.

 고인은 생전에 ‘보수의 원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20대 청년이던 그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후 혁신 대신 국가와 전통을 지키는 보수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때문에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평화 헌법’을 개정해 군대 보유, 자주 방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1985년 8월 15일 광복절(일본은 패전기념일)에는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 참배해 한국과 중국 등 이웃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후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외교에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고(故)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각각의 이름을 딴 ‘론 야스’라고 불리며 밀월 관계를 구축한 일은 유명하다. 이런 배경에서 고인은 “일본 열도를 절대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처럼 만들겠다”는 뜻의 ‘불침항모론’을 언급했다. 당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뭉쳐야 함과 동시에 일본이 소련에 대항하는 중요 전초기지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당시 미국이 방위비 분담 증가를 요구하자, 국내 총생산의 1% 이내로 방위비를 억제하던 방침인 ‘1% 룰’을 깬 예산을 편성하기도 했다.

 보수 인사로 꼽히지만 동시에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지한파’로도 꼽힌다. 1960년대 초반 한일 국교 정상화 때 깊숙이 관여했고 1983년 총리 시절의 첫 해외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하기도 했다. 당시 고인은 “한일 양국 간 불행한 과거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이를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는 등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고인의 저서 ‘보수의 유언’에 따르면 방한 당시 만찬장에서 평소 NHK 한국어 강좌 등을 통해 공부한 한국어로 만찬사를 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담화를 발표하고 “미일 동맹,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등 전후사의 큰 전환점에 있어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자민당은 고인의 장남인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참의원 의원명으로 가족장을 치른다고 밝혔다.


도쿄=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