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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아직도 무섭다” 손흥민의 눈물

“월드컵은 아직도 무섭다” 손흥민의 눈물

Posted June. 25, 2018 08:35   

Updated June. 25, 20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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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린 선수들도 있어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위로를 해줘야 하는 위치니까…. 월드컵은 아직도 무섭다.”

‘아름답고 막을 수 없는 골’을 넣고도 오열했다.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 멕시코전이 끝난 뒤 빠져나오는 손흥민의 눈은 부어 있었다.

 후반 43분. 0-2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가 날린 회심의 중거리 슛은 골대 위 허공으로 날아갔다. 자책감에 휩싸인 표정은 일그러졌고 입에서는 자신을 향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5분 뒤인 후반 48분(추가 시간 3분). 동료의 패스를 받아 멕시코 진영 오른쪽을 드리블로 파고들던 그는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을 날렸다. 대각선으로 약 22m 거리를 날아간 대포알 같은 슛은 멕시코 골대 왼쪽 상단에 꽂히며 그물을 흔들었다. 이번 대회 ‘거미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멕시코의 골키퍼 오초아가 몸을 날렸지만 워낙 빠르고 구석으로 날아간 공을 막지는 못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이 골을 ‘선더볼트(벼락)’라고 표현했다. 
 
 이른바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구역에서 터진 환상적인 골이었다. 손흥민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페널티박스 좌우측 45도 부근에서 하루에 각각 200번이 넘는 슈팅 훈련을 반복하면서 감각을 키웠다. 국제축구연맹(FIFA) TV 해설자는 “정말 아름답고, 막을 수 없는 일격이었다. 골 가뭄에 시달리던 한국의 해결사는 손흥민이었다”고 말했다. 

 24일 멕시코와의 러시아 월드컵 2차전에서 한국은 1-2로 졌지만 에이스 손흥민은 제 몫을 했다. 경기 내내 열광적 응원을 퍼부었던 3만여 명의 멕시코 팬들도 손흥민의 환상적인 골이 터진 순간에는 침묵했다. 경기 후 한 멕시코 팬은 왼쪽과 오른쪽 손가락을 각각 2, 1개 들어올리며 멕시코의 승리를 강조하면서도 “쏜! 판타스틱!(손흥민은 환상적이었다)”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는 대표팀 선수 중 최다인 9개의 슈팅(대표팀 전체 17개)을 시도했다. 공이 중원에서 전방으로 전달되지 않을 때는 하프라인까지 내려가 공수의 연결고리가 됐다. 영국의 BBC는 “한국팀에서는 오로지 손흥민만 빛났다”고 했다.

 패배를 알리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탈진한 몇몇 한국 선수는 그라운드 위에 드러누웠다. 손흥민은 주저앉은 일부 선수를 일으켜 세우며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이런 그의 모습 때문에 현 대표팀 주장 기성용은 “내가 대표팀을 떠나면 주장 완장은 손흥민이 차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동료들 앞에서는 의연했지만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면서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선수들은 정말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너무나도 많은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기 직후 소감을 말하면서 울먹이던 목소리는 라커룸으로 들어가자 오열로 변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경기 직후 라커룸을 찾았다. 상의를 벗고 있던 손흥민은 대통령이 다른 선수들을 위로하면서 다가섰을 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이내 파묻듯 얼굴을 허리 아래로 숙인 채 흐느껴 울었다. 문 대통령이 “잘했어 잘했어 잘했어”라며 다독일 때도 손흥민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기만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 한 뒤 굵은 눈물을 흘려 ‘울보’라는 별명을 얻은 뒤 “이번 월드컵에서는 나도 웃고, 국민들도 웃게 만들겠다”고 했던 그였다.

 또다시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느낀 그는 “정말 잘 준비해도 부족한 것이 월드컵이다. 아직도 (월드컵 무대가) 겁이 난다.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2패를 당한 대표팀이지만 이날 독일이 스웨덴을 2-1로 꺾은 덕분에 16강 진출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는 상태다. 독일은 손흥민에게 특별하다. 그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로 진출하기 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이기 때문이다. 16세였던 2008년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으로 독일 축구 유학을 간 손흥민은 함부르크(2010∼2013년)와 레버쿠젠(2013∼2015년·이상 1군 기준)에서 뛰었다. 손흥민은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독일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정말 죽기살기로 해야죠.”

정윤철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