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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촛불이 시들한 이유

Posted July. 05, 2013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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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광화문에선 국가정보원 규탄집회가 연일 열린다. 좌파 진영 일각에선 2008년의 촛불집회가 재현될 것이란 기대를 한다. 비교해 보면 2008년에 비해 이번에는 더 명분이 있다. 2008년 촛불의 심지가 광우병 괴담이라는 선동의 모래사장에 꽂혀 있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국정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라는 실체가 있다.

그런데 2008년 주부, 청소년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과 달리 요즘 시민들은 무심한 반응이다. 아마도 좌파 진영은 입으로 들어가는 광우병 공포처럼 감정을 자극할 격발 고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분석도 일리는 있지만 근본적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본다.

2008년과 달리 이번엔 국민들이 사안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2008년엔 난무하는 광우병 괴담과 좌파 언론의 선동으로 국민이 진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엔 검찰 수사를 통해 국민이 문제가 심각한 정도, 위법행위의 경중을 나름대로 판단했다.

국정원장이 종북좌파 척결을 강조했고 이를 선거개입 지시로 받아들인 심리전단 직원들이 야권후보 비방 댓글을 올렸으며 그런 댓글이 73개 확인됐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 요지다.

이 결과를 놓고 좌파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 따라서 대선은 부정선거였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은 정통성이 없다는 논법을 전개한다. 그런 논리에 따라 박근혜 퇴진 당선 무효 등의 구호를 내세운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은 민주주의에서 용납해서는 안 되는 범죄다 하지만 위반 내용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었다 따라서 부정선거 운운할 사안은 아니다는 반응이다. 즉 국정원 선거개입이라는 자극적 카피에만 휩쓸리지 않고 내용을 입체적으로 같이 보는 것이다.

촛불집회장을 지나던 대학생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면 수개월 동안 70명이 올린 야당 비방 댓글이 수십 개에 불과했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73개의 댓글은 혼자서 1시간이면 올릴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검찰이 찾아내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수십만, 수백만 건의 댓글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없다. 검찰이 밝혀낸 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야권이 진심으로 의심한다면 국정조사가 아니라 특검을 요구했어야 한다.

은폐의심을 받는 건 검찰로선 억울한 일일 것이다. 필자는 검찰 특별수사팀이 정치적 고려를 많이 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고려는 권력눈치보기와는 다른 개념이다. 즉, 검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절박함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절시켜야 한다는 소명감 등이 수사 태도와 법리 판단에 영향을 미친 정황이 있다. 축소수사는커녕 사명감 과잉, 시대정신 과잉이었다는 지적이 나올 수준이다.

물론 댓글 수가 적다고 국정원의 잘못도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다. 권력하수인의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는 국정원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대오각성했다던 상습 성폭행 전과자가 성추행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다. 비록 추행의 내용이 손 한 번 만진 것이라 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흔들렸다고,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경중을 따지고 사안을 다층적으로 판단하는 국민의 수준과 단선적 비약논법에 매몰돼 있는 좌파 운동권의 수준 차이가 여기서 빚어지는 것이다.

국정원 사건을 보면서 대도() 조세형이 떠올랐다. 4월 서초동 빌라에 침입한 그는 한밤중에 온 동네 다 들리게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붙잡혔다. 정치개입이라는 고질병을 치유하지 못한 채, 허접한 수준의 댓글을 달다 망신당한 아마추어 정보기관의 모습에서 그게 프로가 할 짓이냐며 자신을 꾸짖던 대도의 자탄이 들려온다. 사안의 경중과 맥락을 무시한 채 315 버금가는 부정선거라고 외치는 좌파 운동권에게서도 고질병의 집요함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