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피마른 원전 전쟁 7개월

Posted December. 28, 2009 08:57   

中文

2004년 중국, 200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2008년 캐나다.

한국이 원자력발전소 수주를 위해 뛰어들었지만 고배를 마셨던 나라들이다. 하지만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는 달랐다. 원전 수출 경험이 전무했던 한국은 미국, 프랑스 등 쟁쟁한 선진국들을 제치고 사상 최대 규모의 원전 프로젝트를 따냈다.

1년여에 걸친 총성 없는 전쟁의 승리는 전략의 승리였다. 입찰은 5월에 시작됐지만 한전은 지난해 12월부터 수주 준비팀을 가동했다. 2월 아부다비 현지에서 열린 입찰 설명회가 끝난 뒤 한전은 글로벌과 시스템이라는 카드로 승부를 보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우선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영국의 AMEC사를 컨소시엄에 참여시켰다. 한전 측은 외국 기업의 참여를 통해 한국이 주축이 된 글로벌 팀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며 우리 컨소시엄에 참여한 외국 업체들은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인 아레바, GE-히타치로부터도 참여 제의를 받았지만 낮은 입찰가, 안정된 운영능력을 보고 우리 쪽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시공업체 선정에도 공을 들였다. 심사를 통해 시공능력이 우수하면서도 UAE에서 인지도가 높은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한전 외에도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삼성건설, 웨스팅하우스 등이 참여함에 따라 한전 컨소시엄은 원전 건설부터 운영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설득할 수 있었다. 지경부 관계자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아레바는 원전을 짓는 능력만 있는 반면 우리는 설계, 기술개발, 시공, 운영 등 원전과 관련된 총체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린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종 선정까지는 쉽지 않았다. UAE와 프랑스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탓에 12월 초까지만 해도 아부다비 현지에서는 아레바의 선정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5월 직접 UAE를 방문해 국영 기업인 아레바의 지원 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밀착 스킨십으로 막판 뒤집기에 나섰다. 지경부 고위 관계자들은 수시로 UAE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전 컨소시엄의 장점을 설명했고 청와대, 교육과학기술부, 국방부 등의 외교 채널이 총동원됐다. 한전 관계자는 입찰 초기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때만 해도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총리실, 청와대가 직접 앞장서 수주 준비팀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줬다고 말했다.

초기부터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직접 수주 지원 작업을 챙겼고, 한 전 총리가 물러난 11월부터는 청와대에서 직접 수주 상황을 점검했다. 청와대에서 직접 각 부처에 준비팀에서 요청하는 것은 지체 없이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는 것.

또 50년 만에 원전 수입국에서 원전 수출국으로 변신한 한국의 모습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기술력이 전무한 UAE는 자체 기술을 보유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며 이런 점에서 UAE는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된 한국처럼 되기를 희망했고, 이 점이 경쟁 막바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여기에 아레바가 현재 건설 중인 핀란드 원전 사업의 공기가 2년 이상 지연되고, 공사비가 당초 예정보다 2배로 늘어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한전 컨소시엄은 400억 달러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