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미영이한테 등정 도와달라 빌었다

Posted August. 13, 2009 08:29   

中文

수화기 너머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몇 초 뒤 흐느낌이 들렸다. 울먹였지만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상상조차 못했어요. 이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안타까운 생각만 들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감정 조절이 잘 안되네요.

여성 산악인 최초의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한 개만을 남겨둔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43블랙야크)가 히말라야 가셔브룸(해발 8068m) 등정 뒤 12일 귀국했다. 오 씨는 금자탑을 눈앞에 둔 소감에 대해 아직 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현재 심정은 담담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등정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맛봤다. 지난달 10일 낭가파르바트(8125m) 등정에 성공한 뒤 뒤이어 오르던 고미영 씨의 추락 소식을 들었다. 오 씨는 고인의 이름이 나오자 말을 잇지 못했다. 울먹이던 오 씨는 안타깝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정말 배울 것이 많고 장점이 많은 친구였는데라고 힘겹게 말했다.

그는 고 씨의 사망 후 첫 등반이었던 가셔브룸 등정에 애를 먹었다. 일주일 정도 칩거에 들어갔던 오 씨는 의욕이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힘들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최선을 다했다. 다음 등정에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왕 시작한 거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으로 등반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가셔브룸 등정 때 오 씨를 괴롭혔던 것은 날씨도 험한 지형도 아니었다. 오 씨는 미영이의 추락 사진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산을 오를 때 시도 때도 없이 그 장면이 떠올라 힘들었다. 미영이한테 빌었다. 도와달라고 얘기했다며 다시 흐느꼈다.

오 씨는 정상에 올랐을 때 기쁘긴 한데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지금까지 올랐던 등정과는 다른 감정이었다고 밝혔다. 오 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고 씨의 유해가 안장된 전북 부안을 찾고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달 초 마지막 고봉인 안나푸르나(8091m)에 도전할 계획이다.



김동욱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