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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핫머니 회수는 시기상조

Posted May. 19, 200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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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엔진부품을 만드는 A사가 금방 현금화할 수 있는 당좌자산은 3월 말 현재 2486억 원. 경기가 지금보다 나았던 2006년 말보다 1500억 원가량 늘었다. 회사 측은 은행이 대출 상환을 요구하는 등 예상 못한 결제수요에 대비해 단기금융 비중을 늘렸다고 말했다.

#2. 개인사업을 하는 B씨는 지난 2월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어뒀던 300만 원을 빼서 주식 투자를 해 20%가 넘는 수익을 냈다. 최근 주식을 처분해 수익을 실현한 B씨는 이 자금을 다시 MMF에 넣었다.

단기 유동성(자금) 규모가 사상 처음 800조 원을 넘어선 것은 기업과 개인이 갑자기 자금이 필요할 때에 대비해 단기금융상품에 여윳돈을 넣어두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푼 자금이 한곳에 묶여 있거나 투기 부문으로 흘러간 탓에 실물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투자 대기자금과 비상용 자금 늘어

단기 유동성이 급증하는 것은 고수익을 내는 투자를 준비하거나 비상상황에 대비하려는 수요가 과거에 비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달 이후 공모주 청약에 몰린 46조 원과 인천 지역 새 아파트 분양에 몰린 청약증거금 중에는 이런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염두에 두고 단기금융상품에 대기하고 있던 자금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현재에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산업자금으로 흘러가기에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안전하고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로 돈이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딜레마에 빠진 당국

금융 당국은 현재 단기자금이 시장을 왜곡할 만큼 너무 많이 풀린 과잉 유동성 상태인지를 판단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과잉 유동성 상태라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양분돼 있다. 과잉 유동성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단기유동성 비중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아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흐르는 자금이 너무 많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이 한국은행 자료를 토대로 단기자금의 범주를 따로 설정해 분석한 결과 단기유동성 비중은 올 3월 말 현재 58.3%로 작년 같은 시점보다 10%포인트 가량 급증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좁은 의미의 통화량만 놓고 보면 단기성 자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는 상태라며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 확인되면 통화정책을 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비생산적인 분야로 흘러간 자금 때문에 자산 가격에 거품이 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기 자금의 절대 금액만을 놓고 과잉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3년 7월 단기 부동자금 급증의 실상과 해결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2002년 말 기준 부동자금이 478조 원에 이르고 이 중 139조 원이 과잉 자금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시 보고서를 작성했던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2년에 비해 지금은 기업이 예상치 못한 신용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을 과거에 비해 월등히 많이 보유하는 상황이어서 단순히 유동성이 많다고 해서 과잉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동성 회수는 시기상조

시중에 풀린 자금에 대해 과잉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당장 통화정책을 동원해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아 금융 분야의 충격이 어느 정도나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는 등의 유동성 회수정책을 펴면 금리가 올라 경제 회복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은보고 더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풀지 않는다고 압박을 했는데 시장이 조금 나아졌다고 과잉유동성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홍수용 정재윤 legman@donga.com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