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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통령 아들 뒷바라지

Posted May. 06, 20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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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 공주 신분이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자원입대해 전쟁에서 수송병 임무를 수행했다.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류 왕자는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 때 해군의 전투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여왕의 손자이자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돼 전투부대에서 근무했다. 국가의 부름에 솔선수범한다는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쥬 전통에 따른 것이다. 국정 개입과 비리 등으로 말썽을 피운 우리 대통령 자녀들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과 국정원 직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 문제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 전 원장이 2007년 6월 대통령 총무비서관이던 정상문 씨의 부탁에 따라 국정원 실무자를 시켜 당시 대기업 휴직 상태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이던 건호 씨가 살 집을 알아봐 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아들 뒷바라지에 청와대와 국가정보기관이 동원된 셈이다. 건호 씨는 월세 1600달러의 대학 기숙사에서 살다가 작년 4월 월세 3600달러짜리 주택으로 이사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이 관여한 바가 없고, 권양숙 여사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책임을 떠넘기는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그렇다면 총무비서관과 국정원장이 대통령 아들 일을 국가기관까지 동원해 몰래 처리한 뒤 대통령에겐 아무런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설령 그 해명이 맞는다 해도 결국 건호 씨가 직접 총무비서관에게 부탁하고 국정원장까지 움직였다는 것인데, 그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걸 노 전 대통령은 아는지 모르겠다.

검찰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 측에게 건네진 600만 달러가 모두 건호 씨와 관련된 돈으로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인맥관리 소프트웨어인 노하우 2000까지 건호 씨가 투자한 IT벤처기업에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걸 모르쇠로 일관한다. 노 전 대통령이 아들 뒷바라지에 과도한 사랑을 베풀기보다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가르쳤다면 지금 같은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진 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